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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한반도 할퀸 산불 앞에 소나무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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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구자춘

중앙일보 기고 | 2025년 4월 7일
구 자 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경북·경남에서 발생한 엄청난 산불이 가까스로 진화됐다. 그런데 ‘산불은 소나무 때문이며 산림청이 이를 조장했다’는 주장이 일부 환경운동가들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숲은 복잡한 생태계다. 특정 수종에 책임을 묻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첫째, 소나무는 불길에 휩쓸린 수많은 나무 중 하나였다. 현장은 말한다. “그냥 다 탔다.” 소나무뿐 아니라 참나무, 집, 밭까지 불길은 가리지 않고 번졌다.


둘째, 연평균 약 2건의 낙뢰로 인한 산불을 제외하고 한국의 모든 산불은 사람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이유는 단순히 나무의 종류 때문이 아니다. 건조한 날씨, 강한 바람, 풍속, 경사도, 산림 구조 같은 조건이 맞물릴 때 대형화된다.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잘 타는 특성이 있지만, 이런 조건 없이 혼자 불을 키운 적은 없다. 활엽수도 낙엽이 두껍게 쌓이면 불이 쉽게 번질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결국 산불의 확산을 특정 수종 하나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무리다. 


셋째, ‘송이 키우려고 활엽수를 베고 소나무만 남겼다’는 비판은 사실이 아니다. 산림에서 소나무 숲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로 높지만, 이 가운데 93.2%는 자연적으로 생긴 숲이다. 그저 우리 땅에서 잘 자란 결과다. 숲가꾸기는 산불 예방, 건강한 숲 조성, 목재 자원 확보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 2008년 도입된 송이산 가꾸기 사업의 총면적은 4700여 ㏊(헥타르)로 전체 소나무 숲 면적의 0.3%에도 미치지 못한다. ‘불쏘시개 숲을 조장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넷째, 산불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일본 이와테현 산불로 2900㏊가 소실됐다. 산불이 잘 나지 않는 일본도 이례적으로 건조한 날씨와 강풍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원인을 기후에서 찾았고, 나무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보다 앞서 산림과학원의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할 경우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산불 위험도가 최대 13.5%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기후변화가 더는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된 지금,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해법이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임업인에 대한 위로와 연대라는 토대 위에서, 산불에 강하고 회복력 있는 숲을 어떻게 만들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다시 뿌리내리게 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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