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구보고서
- 이슈+
- 인재채용
- 연구원개요
- 정보공개
- 고객헌장 및 서비스 이행표준
- 학술지
- 농정포커스
- 공지사항
- 조직도
- 공공데이터 개방
- VOC 처리절차
- 글로벌 정보
- KREI논단
- 보도자료
- 원장실
- KREI 정보공개
- 개인정보 처리방침
- 농업농촌국민의식조사
- 주간브리프
- KREI I-zine
- 연구사업소개
- 사업실명제
- CCTV 설치 및 운영안내
- 세미나
- 농업농촌경제동향
- 농경나눔터
- 경영목표
- 연구협력협정 체결현황
- 홈페이지 저작권 정책
- 농식품재정사업리포트
- 동정&행사
- 윤리경영
- 해외출장연수보고
- 이메일 무단수집 금지
- 농업관측정보
- 연구제안
- 신고센터
- 질의응답
- 인권경영
- 체육시설 및 주차장 운영안내
- 뉴스레터
- 임업관측정보
- KREI CI
- 찾아오시는 길
KREI논단
비상과 일상 사이, 역사와 씨앗의 무게
![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images/sub/open_mark4.png)
한국농정 기고 | 2024년 12월 15일 | |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세계 최초로 설립됐으며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종자은행이었던, 레닌그라드의 파블롭스크 실험국에서 벼 품종 담당이던 드미트리 이바노프가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1942년 1월,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의 일이다. 그 외에도 땅콩 담당 알렉산드르 슈킨, 귀리 종자 담당 리디야 로디나 등 연구자 8명이 실험국 건물 안에서 아사(餓死)했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채 계속된 6개월의 공방전 중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고, 실험국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이들이 굶어 죽은 것이다. 그들은 전쟁의 포화에 갇힌 상태에서 몇 달을 버티면서도 끝끝내 자신들이 지키던 종자에 손대지 않았다. 수십 일을 굶다가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들이 지켜낸 종자는 나중에 나치 독일과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소비에트 연방의 식량 생산을 복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또 1970년대에는 에티오피아의 대기근으로 굶어 죽을 운명이었던 수많은 인명을 구해냈다. 이 농학자들은 벼락같이 덮쳐온 비상에 맞서 수백 만의 일상을 지켜낸 것이다.
45년 전, 1979년 12월 12일에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이 비상한 사태는 1987년 6월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일상을 침탈했다. 그렇게 한 줌의 군인들이 일으킨 비상에 일상을 잡아먹힌 사람들의 내력은 말 꺼내기도 어렵고 헤아릴 수조차 없다. 몇 해 전 90세가 되도록 장수한 내란의 수괴가 사망했을 때 뇌리에 떠오른 말은 ‘용서’나 ‘화해’ 같은 게 아니었다. 은원불망(恩怨不忘), 은혜와 원수는 끝내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때에도 내란 세력의 잔당은 여전히 안면을 바꾼 채 버젓이 일상을 누리고 있었다.
대략 9년 전, 2015년 11월 중순 그날 밤도 바람만큼은 차가운 초겨울이었다. 이제는 일상을 지탱하지 못하겠다며 비상을 선언하고 나선 농민들 사이에서 백남기 농민이 살수차(殺水車)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서울에 올라오기 이틀 전 백남기 농민은 다음 해의 일상을 준비하려 밀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해마다 하는 일상적인 농사일이었다. 일상과 비상을 오가던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그 겨울과 이듬해 봄은 수많은 농민에게 일상일 수 없었다. 지금도 일상을 비상처럼 사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농민 백남기가 쓰러진 1년 뒤에는 온 국민이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비상사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국민 대부분에게는 곧 일상이 찾아왔다.
그리고 엊그제, 2024년 12월 3일 초겨울 밤 비상계엄 포고와 해제 사이 여섯 시간을 가슴 졸이며 앉아 있다가 출근했다.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앉아 있던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 칼럼 원고의 마감 날짜를 일러주는 기자의 전화였다.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고, 거리에는 날마다 수십만 혹은 백만의 군중이 운집한다. 글을 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쓰기 시작한다. 세상이 뒤집혀도 글을 꼭 써야겠다는 식의 비장한 결의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집으로 직장으로 복귀하면 다시 제 할 일을 하다가 저녁이 되면 또 거리에 나온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비상 중에도 일상은 멈출 수 없다는 걸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일상과 비상을 오가면서, 역진하는 민주주의의 수레바퀴를 막아서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누군가 말했다. “국회의사당에서 시민들이 반란군의 진입을 막아내며 계엄을 해제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로부터 얻은 용기와 지혜 덕분이다.” 비상에 맞서 일상을 지키려는 갑남을녀(甲男乙女)의 힘들이 모여 강물이 돼 도도하게 흐르는 것, 그것이 역사다. 그렇지만 슬픈 역사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아 축하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훌륭한 문학 작품은 가슴 시린 역사 속에 잉태된다는 걸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상은 다시 찾아왔다. 상황은 끝나지 않았지만, 곧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사람들은 기대한다.
그러나 일상은 비상시에만 소중하게 회고된다는 점을 기억해 두련다. 일상에서, 일상의 소중함은 잊힌다. 그래도 일상은 해마다 어김없이 시작한다. 몇 달 뒤, 언 땅 녹을 때 논밭 갈고 씨뿌리는 시절이 오면 농민의 일상은 다시 시작되리라.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뿌려진 씨앗은 언제나 비상을 품고 있다는 걸 잊지 않겠다.
- 다음글
- 농산물 안정적 수급, 무엇이 필요한가
- 이전글
- 농업성장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