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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귀농·귀촌 정책의 목표, ‘환대하는 농촌, 참여하는 귀농·귀촌인’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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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6년 9월 8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약 20년 전, 시골의 어느 절에 들렀다가 초입에서 ‘인구증가대장군’이라고 새긴 장승을 보았다. 인구가 늘기를 기원하며 장승까지 깎아 세운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는 ‘귀농·귀촌’을 외쳤고, 요즘에는 ‘지방소멸’과 ‘생활인구’를 말한다. 표현은 달라졌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불러들이려는 농촌 지방자치단체의 절박함은 그대로다.

 

귀농·귀촌 정책은 기본적으로 직업과 거주지를 바꾸려는 도시민의 선택을 지원하는 정책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정부는 상담과 교육을 제공하고, 주택과 농지를 마련할 자금을 융자하며, 때로는 보조금도 지급한다. 농촌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사비를 지원하고 빈집을 알선하며 각종 혜택을 내걸고 사람을 유치한다. 도시민들의 ‘시골살이 선택’이 모이면 농촌 인구가 늘거나, 적어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의 속도가 늦춰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생애의 어느 고비에서 시골살이를 선택한 사람이 새로운 장소에 무사히 정착하도록 국가가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한가? 도시민들을 농촌으로 옮겨 놓는다고 해서 그 자체로 한국의 농업과 농촌이 직면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귀농인과 귀촌인의 삶 역시 상담이나 자금 지원만으로 안정되지 않는다. 삶의 질은 상당 부분 ‘장소(場所)의 함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웃을 만나고, 무슨 일을 하며, 지역사회에서 어떤 관계와 역할을 갖느냐에 따라 정착의 성패가 달라진다.

 

1990년대 중반에 귀농이라는 말을 널리 알린 귀농운동의 문제의식도 단순한 인구 유치와는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귀농’은 개인이 더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가는 선택에 그치지 않았다. 쇠락하는 농촌 지역사회와 힘겨워지는 한국 농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는 사회적 실천이었다. 농사짓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농업의 가치를 되찾으며 농촌을 변화시키자는 운동이었다는 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귀농인과 귀촌인 개인에 대한 지원을 없애자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것이다. 귀농·귀촌 정책의 일차적인 대상은 귀농인이나 귀촌인 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맞이할 농촌 지역사회여야 한다. 귀농인이나 귀촌인 개인에 대한 지원을 농촌 지역사회가 필요한 사람을 찾고, 맞이하고,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 안에 배치해야 한다. 가령, 어느 농촌 지역이나 새로운 농민이 필요하다. 농지는 그대로인데 농사지을 사람은 줄고, 남은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그러나 농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자금을 빌려준다고 해서 곧바로 농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농사에는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경험, 농지, 시설, 판로, 무엇보다 이웃-동료가 필요하다. 지역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교육기관이나 유투브 채널에서 얻기 어렵다.

 

충남 홍성군의 젊은협업농장은 지역사회가 새로운 농민을 어떻게 길러 낼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젊은 예비 농민들이 함께 농사짓고 생활하면서 기술과 경험을 쌓고, 지역의 농민 및 여러 조직과 관계를 맺는다. 농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 지역에서 농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귀농정책은 귀농 희망자를 안내하고 교육해 농촌으로 보내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이처럼 지역사회가 필요한 사람을 찾고 농민으로 길러 내며 정착시키는 조직적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사람을 길러 내는 일은 농지를 준비하는 일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쪽에는 후계자를 찾지 못한 고령농과 앞으로 휴경될 가능성이 높은 농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농사를 짓고 싶지만 땅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지금까지의 귀농정책은 귀농인이 스스로 농지를 찾아 얻도록 맡겨 왔다. 일본의 ‘사람-농지 플랜’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이 있다. 지역 주민들이 앞으로 누가 지역농업을 이어갈 것인지, 농지를 누구에게 어떻게 전해 줄 것인지를 함께 논의하고 계획하는 방식이다. 우리도 마을이나 읍·면 단위에서 은퇴할 농민과 농업을 이어갈 사람, 승계할 농지와 필요한 지원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귀농정책은 도시민에게 농지를 알아서 구하라고 하는 정책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농업을 이어갈 사람과 그 사람이 경작할 농지를 계획적으로 준비하고 관리하게 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귀촌정책도 마찬가지다. 사람부터 불러 놓고 그가 지역에서 무슨 일을 할지는 개인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먼저 찾아야 한다. 농촌에는 돌봄, 교육, 문화, 교통, 먹거리, 환경관리, 공동체 활동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주민들에게 절실하지만 시장의 일자리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공공적인 활동이 적지 않다. 농촌 지역사회에 필요한 활동과 역할을 제시하고, 그 일을 맡을 사람을 지역 밖에서 초대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정 기간 활동비와 거주 여건을 보장하고, 외부에서 온 사람이 주민들과 함께 일하면서 지역을 이해하고 관계를 쌓게 하는 것이다. 그 활동이 이후의 일자리와 지역사회 안에서의 역할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귀촌정책은 막연하게 도시민을 유치하는 정책이 아니라 농촌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공적 역할을 마련하고, 그 일을 함께할 사람을 찾아 초대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농촌 지역사회의 변화도 필요하다. 농촌이 오래 살아온 사람들끼리만 나누고 뭉치는 닫힌 장소로 남아서는 스스로를 갱신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그가 지닌 경험과 능력을 펼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귀농인과 귀촌인 또한 농촌의 땅과 경관, 지원금과 행정기관을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웃과 어울리며 공동의 장소를 함께 가꾸는 주민으로서 지역사회에 참여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은 사람을 농촌으로 옮겨 놓는 데서 끝나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가 필요한 사람을 찾고, 농민으로 길러 내고, 농지를 이어 주며, 공동의 역할을 맡기고, 새로운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해야 한다. 귀농·귀촌 정책은 ‘지역사회에 참여할 귀농인과 귀촌인’을 찾고 맞이하는 정책인 동시에 ‘환대하는 농촌 지역사회’를 만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사회를 만드는 것은 규범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환대이다”(《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2015년, 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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