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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공동영농과 마을영농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25년 9월 12일 | |
김 정 섭(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농작물 종류마다 성장결실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 있다. 토양이나 기후가 맞지 않으면, 남귤북지(南橘北枳), 귤이 탱자가 된다. 제주도의 감귤이 값비싸다며 경상북도 봉화에 옮겨 심을 농민이 있겠는가. 그런데 농업ㆍ농촌 정책에서는 어설픈 옮겨심기를 쉽게 만난다. 어딘가에 참신한 사례가 자생하여 소문나면 그것을 참고하여 정책사업이 기획되고 전국에 살포되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귤이 아니라 탱자! 자주 접하는 일 아닌가. ‘어리석음의 형식은 반복’(김영민, 《동무론》, 186쪽)이라더니, 그 어리석음의 연유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리라. 그렇지만 오늘은 급한 대로 사안 하나를 두고 비평한다.
공동영농법인을 육성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서에는 “농지 임차 등으로 농지 집적화ㆍ경영 규모화를 추진하는 공동영농법인 육성(100개소)”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이 기획은 ‘공동영농’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지만, 그 개념은 미숙한 땡감 같아서, 그 의도를 알기 어렵다. 저것이 귤이 아니라 탱자일지도 모른다는 내 의심의 출처는 ‘공동영농’이라는 말이다. 저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에게는 ‘공동영농’이라는 말이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쪽에 관심을 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이 개념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에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늘봄영농조합법인 사례가 상당한 참고가 되었으리라고 대략 짐작하는 듯하다.
늘봄영농조합법인 사례를 살펴보자. 늘봄영농조합법인은 마을의 80여 농가가 농지를 법인에 임대하고 농업 생산과 경영을 법인에 일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합쳐서 33만평(110ha) 정도의 논을 법인이 모두 임차해 농지를 모았다. 그리고 농지 대부분에서 벼가 아니라 감자, 양파, 콩 등의 작물을 재배했다. 2023년 동절기에는 양파(56ha)와 감자(20ha)를 재배했고, 2024년 하절기에는 콩(105ha)과 벼(5ha)를 재배했다. 조수입에서 경영비를 제외한 몫이 24억원을 넘었다고 한다. 법인에 토지를 임대하기 전에 80여 농가가 각기 벼를 재배할 때의 농업소득 총계가 약 8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과거에 1ha에서 약 700만원의 소득을 얻었는데, 2024년 말에는 농지임대료와 배당을 합친 소득이 1ha 기준으로 1000만원을 넘었으니 두 손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자경(自耕)할 때보다 일을 훨씬 덜 하게 되었고, 추가 수입이 필요하면 법인의 농작업에 가끔 참여해 일당을 챙길 기회도 있으니 훌륭한 경영 모델이다.
이쯤 되니 전국 각지의 농업인, 기자, 연구자 등이 늘봄영농조합법인을 줄지어 방문하였다. 경상북도는 이 성공사례를 널리 홍보하느라 분주했고, 이런 일을 감지한 농림축산식품부가 이른바 ‘공동영농법인’을 대대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선 듯하다. 그런데 나는 왜 걱정하는가? 늘봄영농조합법인의 사례가 탱자라는 게 아니다. 늘봄영농조합법인이라는 귤을 정부가 제대로 옮겨 심을 능력이나 성의가 있는지를 걱정하는 것이다.
사례를 다시 들여다보자. 늘봄영농조합법인이 월등히 높은 수입을 올린 주된 요인을 ‘농업 경영 규모화’라고 설명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심각한 오해의 씨앗을 뿌리는 꼴이다. 소득 향상의 직접적 원인은 ‘이모작’이다. 물론, 33만평이나 되는 농지를 단일한 경영 주체가 관리하는 게 아니었다면, 벼농사를 사실상 포기하고 밭작물 위주의 이모작으로 작부체계를 전환하는 과감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령 농가들 각자는 노동력 문제 때문에 욕심내지 못할 밭작물 이모작을 가능하게 한 것은 농지를 모으고 대형 농기계를 도입한 전략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규모의 경제’ 효과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량을 늘림으로써 단위 생산비용, 즉 제품 하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범위의 경제’란 여러 가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하나의 사업체가 함께 생산할 때 드는 총비용이, 그 제품이나 서비스를 각기 별도의 사업체들이 한 가지씩 생산할 때 드는 비용들의 합계보다 더 적어지는 것을 말한다. 늘봄영농조합법인의 이모작은 ‘범위의 경제’를 추구한 전략이다.
사실, 늘봄영농조합법인이 한 일은 20년쯤 전에 마을영농(집락영농)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실천이다. 일본에 그 기원을 둔다. “마을영농(집락영농)이란 마을(집락)을 단위로, 농업생산과정의 전부 혹은 일부가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공동적ㆍ통일적으로 이루어지는 영농으로써 마을(집락) 단위에서 농업생산요소를 합리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지역농업 시스템”(유정규, 2017)이라고 정의된다. 농업생산요소의 합리적 이용이 반드시 규모의 경제를 지향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늘봄영농조합법인도 그렇고 알려진 일본의 사례들도 ‘범위의 경제’를 추구한 것이다.
혹자는 ‘규모의 경제’니 ‘범위의 경제’니 하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농지를 모아서 큰 땅에서 농사지었으니 ‘규모화’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든 말든 굳이 따질 일은 아니겠다. 그러나 정책 추진의 취지와 방안을 담은 정부 문건에 관한 것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공동영농’을 두고 “농지 임차 등으로 농지 집적화ㆍ경영 규모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정책 문건에서 규정하면, 벼농사만 수십만평 이루어지는 어느 들녘의 여러 농가가 소유한 농지들을 한 농업법인이 모두 임차해 혹은 위탁영농으로 똑같은 벼농사를 지어도 ‘공동영농’이게 된다. 이 경우 얻을 수 있는 ‘규모의 경제’ 효과는 별로 없다. 농기계를 가진 농업인이 모내기나 수확 같은 주요 농작업을 대행하는 것은 농촌에 이미 널리 퍼진 관행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새로 만든 공동영농법인이 수행한다고 해서 벼농사의 토지생산성이 높아질 것은 별로 없다. 외려, 나름의 질서 속에서 농지 임대차나 농작업 위탁의 관계가 형성된 농촌 지역사회에서, 뜬금없이 어느 법인 하나를 정부가 지원하면서 이미 ‘규모화를 달성한’ 농업 경영체들의 밥그릇을 빼앗아간다는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상상해보시라. 농지를 전부 빌려주면 지금보다 1.5배 더 많은 소득으로 되돌려주겠다면서, 어느 법인 대표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제안하고 다닌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제안자와 마을 주민들 사이에 견결(堅結)한 신뢰와 협동의 경험이 밑바탕에 있는 게 아니라면, 그런 제안은 잠자리 눈곱만큼도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다. 제안자는 몽상가 혹은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다. 지역사회 안에서 지역농업의 장래와 지속가능성을 진정성 있게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경험이 쌓이는 만큼, 늘봄영농조합법인 같은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 ‘마을영농’을 두고 ‘공동영농’이라고 바꿔 불러도 뭐라고 딴지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협동을 전제로 하는 실천은 ‘시간의 딸(filia temporis)’이라는 점을 정책 당국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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