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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논단
우크라이나발 식량안보 위기 넘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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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고 | 2022년 5월 19일 |
김 홍 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은 식량안보 위기에도 방아쇠를 당겼다. 지난 3월 국제시장에서 밀 가격은 2월보다 37%나 폭등해 1톤당 405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미국 농무부 등이 발표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농업 생산 및 교역 전망치를 바탕으로 이번 전쟁이 한국 물가에 끼칠 영향을 분석해봤다.
이에 따르면 가공식품은 3.4~6.8%, 사료는 5.3~10.6%까지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코로나19 장기화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전쟁으로 국제 곡물 가격까지 급등하자 식량안보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금 상황은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한 2007~2008년의 애그플레이션과 유사하다. 1970년대 세계 식량 위기 이후 30년간 지속한 낮은 곡물 가격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갑자기 발생한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은 곧바로 농식품 물가 급등을 초래했다. 1970년대 후반 쌀 자급을 달성하면서 잊고 지냈던 식량안보 문제가 다시 국가 어젠다가 됐다.
정부는 ‘국제 곡물 조기경보시스템’을 중심으로 국제 곡물 위기 대응체계를 구축했다. 국내 생산·공급 확대, 해외 농업 개발, 국가 곡물 조달시스템 구축 등 세 가지 축으로 위기 대응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 곡물 조기경보시스템이 위기 징후를 탐지하면 단계에 따라 마련된 대응수단을 동원하도록 설계됐다.
위기 대응체계의 대응력은 위기 시 동원할 수 있는 대응 수단의 확보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위기 대응 수단 마련을 위한 세 가지 축은 여전히 미흡하다. 우선, 자급률 증대를 위한 국내 생산·공급 확대 정책은 정부의 노력에도 낮은 수익성과 충분하지 못한 농지 등의 국내 농업자원 부족으로 20%대의 곡물 자급률마저 위협받고 있다.
또한 곡물 수출국의 생산과 수확 후 유통·교역 단계 진입을 목표로 하는 해외 농업 개발과 국제 곡물 조달시스템 구축 사업은 곡물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인 2010년대 중반 이후 정책 추진 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20년 해외 농업 개발을 통한 곡물 국내 반입량이 우리나라 총수입량의 1%에도 못 미치는 10만t 남짓에 불과하다. 2011년 곡물 수출 터미널을 확보하려고 했던 ‘aT Grain Company’가 성과 없이 무산된 이후 공공 부문에서의 추가적인 사업이 진행되지 못했다.
국제 곡물 위기 대응은 대규모의 정부 재정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민·관의 역할 정립과 협조를 전제한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1970년대 초의 식량 위기를 계기로 국제 곡물 유통·교역 단계에 진입한 일본의 전농(Zen-Noh)과 종합상사가 대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은 이후에나 안정화될 수 있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자국산 밀이 수입산보다 경쟁력을 갖도록 생산비 지원을 지속해 왔으며 그 결과 10% 이상의 밀 자급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애그플레이션 이후 진행된 한국의 대응체계 구축과정과 일본 사례는 공공 부문의 정책만으로 단기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정부의 국내 생산·공급 확대 정책에 더해 민간부문의 곡물 수출국 생산·유통·교역 단계 진입이 이뤄져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즉, 해외 곡물 도입의 주체인 민간부문 가치사슬이 수출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중장기적으로 제도 및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위기 때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관련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교훈은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의 명언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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