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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 경기도 34곳 '무약촌'...가벼운 통증은 참는 게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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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속 마스크 대란으로 주목받은 곳 중 하나는 약국이다. 지난 4월 말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경기도의 약국 개수만 총 5천95곳(5천110곳 중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은 곳 제외)이다. 전국 2만3천여곳의 22%가 경기도에 몰렸다. 그런데 낯선 광경이 포착됐다.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사려고 우체국이나 하나로마트 등으로 긴 여정을 떠나는 모습이다. 동네에 약국이 없어서다.

약국은 마스크 대란 이전에도 동네 주민들의 1차 의료기관 역할을 해왔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 시골 지역의 약국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본보 데이터텔링(데이터+스토리텔링)팀은 첫 번째 주제로 경기도 약국지도를 들여다봤다. 한 달여간 지역별 약국 주소를 통해 행정안전부의 행정구역상 읍면동 인구를 쪼개어 분석해 본 결과 도내 34곳의 읍면동에 약국이 단 한 곳도 없었다. 약국의 존재는 지역별 편차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도심에는 약국이 집중됐고, 농촌이 대부분인 지역에서 약국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혹자는 수요가 많은 곳에 몰리는 게 당연하다고 할지 모른다. 병의원과 사람이 많은 곳에 약국이 들어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논리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건강할 권리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데이터텔링팀은 약국 없는 그곳으로 가봤다. 그곳엔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율도 높았다. 도보로 한 시간 넘는 거리에 약국이 있어 가벼운 통증은 참는 게 일상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경기도 무약촌(無藥村)이라고 부른다.


경기도 무약촌은 16개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경기 동북부ㆍ중남부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는 과천과 남양주, 평택 등에도 무약촌이 존재했다. 지자체 내에서도 세부적인 인구 수, 경제력 등의 편차에 따라 약국 밀집도가 다르다는 뜻이다.

28일 본보 데이터텔링팀이 지난 4월 말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도내 약국 5천95개를 분석한 결과, △과천 △남양주 △평택 △시흥 △파주 △광주 △광명 △군포 △하남 △이천 △안성 △포천 △여주 △동두천 △가평 △연천 등 16곳의 지역에 약국이 없는 읍면동이 존재했다.

가장 많은 무약촌을 보유한 시군은 연천(5곳)과 하남(5곳)이며, 파주(4곳)와 포천(3곳), 동두천(3곳)이 그 뒤를 이었다. 광명과 군포, 이천 등 8곳에도 무약촌이 1곳씩 존재했다.

10개의 면이 있는 연천군에는 절반에 해당하는 5곳(미산면, 신서면, 왕징면, 장남면, 중면)에 약국이 한 곳도 없었다. 하남시도 행정동 14개 가운데 감북동, 감일동, 위례동, 춘궁동, 초이동 등 5개 동이 무약촌이었다. 삼성전자와 평택브레인시티, 평택송탄산단을 품으며 경기남부지역 경제 허브 역할을 할 평택에서도 무약촌이 있었다. 23개의 행정동으로 나뉜 평택에서 5천316명이 사는 현덕면엔 약국이 없었다.

이런 무약촌엔 ‘인구 수 1만명 이하, 65세 이상’의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인구 수 1만명 미만으로 65세 이상 노년층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 대부분 무약촌이었다. 응급 상황이나 건강 상담, 약물 과다복용 등 약국 수요가 많은 노년층이 오히려 ‘건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34곳의 도내 무약촌 중 파주시 교하동과 군포시 대야동, 하남시 감일동ㆍ위례동 등 4곳을 제외한 30곳이 모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해당 지자체의 65세 이상 평균 비율을 훌쩍 넘어섰다.

행정동 8곳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인 동두천시에선 약국이 없는 3곳(중앙동 30%, 소요동 28%, 상패동 28%)과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1~2위 지역이 일치했다. 가평군 역시 무약촌인 북면(3천925명)의 고령화 인구 비율(35%)이 가평군(25%) 행정 읍면동에서 가장 높았다. 파주 진동면은 거주자 159명 중 47%(74명)가 65세 이상으로, 파주시 평균 65세 이상 인구 비율(14%)보다 세 배나 높았다. 또 파주시 교하동(4만1천57명), 군포시 대야동(2만369명), 하남시 위례동(1만9천241명), 포천시 신북면(1만2천688명)을 제외하고 모두 인구 수가 1만명 미만이었다.

동두천ㆍ연천 vs 수원

지난 26일 동두천시 상패동. 4천850여명이 사는 이곳은 인근 중앙동, 소요동과 함께 동두천시 무약촌이다. 상패동 선곡ㆍ인곡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약국은 지행동의 지행온누리 약국. 걸어서 50분, 승용차로는 12분 거리다. 차가 없으면 배차 시간이 1시간 간격인 51번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상패동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이28%로 동두천시의 또 다른 무약촌인 소요동(30%)에 이어 고령층이 많다. 이곳에서 60년을 살아온 주민윤종순씨(78)는 “마을에서 내가 어린 축에 속하는데 운전을 못 해 이장 차를 얻어타고 가거나 다 같이날을 잡아 함께 의료원을 방문한다”며 “가벼운 통증은 그냥 참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경기도에서 무약촌이 가장 많은 연천군(5곳)으로 향했다. 3천231명이 사는 군남면의 유일한 약국인 군남 임진강약국엔 연세 드신 노인분과 주민들이 수시로 문을 열었다. “콧물이 나는데 좋은 게 있나요.”, “밭일하다가 벌레한테 물렸어요.”, “요즘 소화가 잘 안 되네…”. 이 마을에서 건강 지식이 있는 약사는 임형균씨(63)는 단순히 약만 제조해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마을 건강 주치의이자 상담사이기도 했다. 연천군청 주변 읍ㆍ면 3곳을 제외한 군남면,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신서면, 중면, 장남면 등 7개의 면에 약국은 단 2곳이다. 면적만 516㎢에 달하다 보니 접근성은 당연히 떨어진다. 같은 군남면에서도 반경 5.8㎞에서 사는 황지리 주민들이 약국에 가려면 배차 시간이 200분에 달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자동차가 없으면 사실상 약국에 갈 수 없다.

반면, 도내에서 약국이 가장 많은 곳은 수원시 팔달구인계동이다. 면적 3㎢의 이곳엔 38개의 약국이 있다. 10분간 인계동 권광로를 따라 걸으니 11곳의 약국을 찾을 수 있었다.이처럼 수요가 많은 곳에 약국이 몰리는 게 당연하지만, ‘건강할 권리 불평등 해소’ 차원에서 약국 사각지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공 심야약국’,‘의약분업 예외지역’ 등의 제도에서도 알 수 있듯 약국은 의료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공의 역할을 분명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달 경기도약사회장은 “약국을 개설하고 싶어도 운영의 어려움 등으로 사각지대에 들어서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약국을 공공의 개념에서 풀어가는 큰 틀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조선남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

“지역주민의 공평한 ‘건강할 권리’의 관점에서 무약촌 지대를 바라봐야 합니다”

조선남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외진 농촌지역에는 보건소나 병의원이 없을 뿐 아니라 약국마저 없어 주민들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건강할 권리에서 소외된 것”이라며 “이런 소외된 지역에 약국이 반드시 필요하다. 약국은 공공재적 특징이 있어 안정적으로 의약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약국은 농촌처럼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곳’엔 세워지기 어렵다. 조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공적 지원제도’를 주장했다.

그는 “늦은 시간 의약품이 필요한 시민을 위해 지자체가 조례를 만들어 공공 심야약국을 운영하는 사례가 있다”며 “약국은 인건비만 보조받아 공익적인 차원에서 운영하고, 지자체가 지원해줘 공공역할을 부여한 덕에 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또한, 의약분업으로 약사가 투약할 수 있는 약의 가짓수가 적고 환자의 증상을 파악하려는 행위도 제한돼 있다”며 “의료기관이 없는 등 사각지대가 많은데 주민의 건강 보호를 위해 기본적으로 약국이 개설될 수 있도록 세밀한 분석을 통한 지원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기일보 데이터텔링팀 = 정자연ㆍ정민훈ㆍ여승구ㆍ이연우ㆍ손원태 기자, 데이터지도 제작=곽민규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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