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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더 커진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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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준기

한국일보 기고 | 2023년 7월 28일
박 준 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냉전, 탈세계화 그리고 기후변화 위기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곡물이 주목받고 있다. 지금까지 곡물은 국내에서 생산하기보다 외화 획득 능력을 키워 수입으로 해결하는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최근 국제시장에서 곡물의 가격 변동성이 커지자 ‘식량 안보’라는 용어를 사용할 만큼 위기감이 불거지고 있다.


곡물은 사람이 소비하는 ‘식량’과 가축이 소비하는 ‘사료’로 나뉜다. 식량과 사료를 모두 포함한 우리의 곡물자급률은 2021년 기준 20.9%. 필요 곡물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곧 국제 교역 질서가 안정돼야 국내 곡물 수급도 원활하다는 의미다. 세계는 인구 증가와 소득향상으로 곡물의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이에 반해 기후변화로 곡물의 생산량 변동성은 커지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교역 질서가 불안정해지면서 국제 곡물 수급의 우려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자급 역량이 부족한 우리는 식량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먼저, ‘식량 안보’는 곧 위기감을 전제하므로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식량 수급은 시장 역할을 중심으로 해결해 왔다. 하지만 최근의 불확실성은 국제 정치, 기후변화 등 시장 외적인 요인이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곡물 관련 국가 계획이 글로벌 불확실성 대응에 충분한지 재검토하고, 가용한 자원과 예산을 투입하여 실현 가능한 자급 생산 역량을 갖추며, 주요 곡물의 해외 조달 및 비축 방식을 재정비해야 한다.


다음으로 실천 가능한 곡물자급률 제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구수 대비 농지 규모가 작은 나라가 곡물 부족 문제를 자국 내 생산으로 모두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온전히 해외 조달에만 의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 농업 자원과 역량을 활용해 주요 곡물의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5년마다 곡물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 곡물자급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해 곡물자급률 목표치는 선언적 의미에 머물렀다. 이제는 농지 관리, 기술 개발, 수요처 확보 등 주요 곡물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실현 가능한 목표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곡물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곡물자급률은 20% 남짓이지만, 쌀은 과잉 생산을 우려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우리 농업 현실과 곡물 수요를 고려할 때 양적 확대 이상으로 다양성 확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가축의 목초ㆍ건초 등 조사료의 자급률은 80% 정도다. 그런데 주요 조사료 수입국과의 FTA 이행으로 단계적으로 관세가 철폐되면 현행 자급률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 조사료의 자급기반 확보를 위해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식량안보에 대한 정부의 추진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쌀에서 콩 혹은 조사료 등으로 재배 작물을 전환할 경우, 농가가 전환된 품목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농지 제도를 정비하고, 전환된 품목의 생산량 증가에 따른 기존 농가의 수익 하락을 막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대목이다.


최근 식량안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곡물 수급의 불안정성이 조금만 커져도 국민의 건강, 더 나아가 생존과도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 여건상 모든 식량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지금은 우리 손으로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목표와 세부 방안을 마련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강한 의지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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