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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유통의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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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수축산신문 기고 | 2019년 6월 18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블랙박스는 비행기나 선박, 차량 등 이동체에 탑재해 운행 중 발생하는 모든 운행자료와 대화, 영상 등을 담아 비상시나 사고발생 시에 수거, 개봉해 진상을 밝히는 말 그대로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색 박스’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동체의 블랙박스와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도 불랙박스가 존재한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생산자나 기업, 중간유통에 관여하는 상인들은 누구나 자기만 아는 블랙박스를 만들어 자기만의 이익을 내려 한다.


그 블랙박스 안에는 기업의 기술, 노하우, 리스크, 정보, 전략이 들어있다. 블랙박스에 따라 접근과 해독이 어려운 것이 있고 상대적으로 들여다보기 쉽고 해독이 수월한 것도 있다. 첨단기술이나 노하우로 제조한 공산품은 제조기업의 블랙박스가 있어 가격이나 마진을 기업 마음대로 정한다.


반면에 이들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기업은 블랙박스가 없어 판매대행 수수료만 받아 살아가기 빠듯하다. 

 

공산품과 달리 생산에 특별한 기술이나 노하우가 적고 유통 중 신선도 변화가 큰 농산물은 유통, 가공을 거치면서 블랙박스가 생성된다.


물론 농산물의 유통, 가공 과정에서도 나름의 기술과 노하우가 발휘될 수 있으나 그보다는 리스크와 정보, 전략 요소가 블랙박스에 가득하다. 농산물에 블랙박스가 많을수록 중간유통비용이 늘어나고 마진이 커진다.

 

농산물은 지역적으로 산재해 있는 생산지에서 수집, 반출하는 산지수집상들이 밭떼기, 저장, 가공하는 과정에서 블랙박스가 만들어지고 도매시장의 중도매인들이 경매 등을 통해 구매해 소매상들에게 판매하는 과정, 특히 소매업체에서 재포장, 절단, 단순가공처리, 저장 판매하는 과정에서 블랙박스가 만들어진다.


블랙박스를 통과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농산물 유통, 가공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블랙박스는 결국 소유권이 이전되고 또는 위탁판매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특징이 있다. 단순히 중개기능만 수행하거나 저장, 포장, 가공, 운송 등 단순 기능만 수행하는 유통주체들은 단순기능 수행에 따른 수수료 수입만 얻기 때문에 특별한 블랙박스가 있지 않다. 


결국, 농산물 유통마진의 축소는 블랙박스를 최대한 줄이며 블랙박스의 내용물인 정보와 리스크를 공유하고 투명화하는 데서 달성된다.


산지에서는 생산자조직을 육성해 공동출하하고, 선도거래나 계약재배로 정보흐름을 투명화하고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도매단계에서도 거래과정을 투명화하고 생산유통이력추적제와 인증제도 등을 통해 정보를 공유, 공개하고 투명화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소매단계에서는 소비자 접점에 제한된 지역소매상권에서 소매점들의 경쟁이 커질수록 블랙박스가 투명해지고 줄어들 수 있으며, 산지직송 등 전자상거래가 확대될수록 블랙박스는 줄어든다.  


그러기에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거래하는 로컬푸드 직거래는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파머스마켓이 20년 전 2000개 수준에서 현재 8000여개로 늘어나고 일본의 직매장이 다양한 형태로 급증해 2만 개가 넘는 것은 어쩌면 블랙박스를 생산자와 소비지가 협력해 흡수하려는 노력의 결과이다.


물론 직거래는 지역적 제한으로 유통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고 생산자나 소비자가 대면거래를 위해 서로 시간을 들이고 비용을 지불하는 노력이 불가피하나 중간유통과정의 블랙박스를 최소화하는 만큼 사회적 비용과 물류비용, 과도한 유통마진 발생구조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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