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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과 농업·농촌
3006
기고자 송미령
농민신문 기고 | 2018년 4월 2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


국민소득 높아졌지만 삶의 질 낮아

‘반농반X’ 등 대안적 삶 눈길 끌어


시대적 현상이나 사회 구성원의 지향성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현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은 ‘워라밸’이 아닌가 싶다.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의 앞글자를 딴 신조어다. 일하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에서 양립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은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 변화나 라이프 스타일의 다양화를 배경으로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사용된다. 특히 최근 국회에서 근로시간을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다.


우리나라는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하고 있다. 1996년에 OECD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2000달러였다. 2018년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열심히 일한 결과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성장의 크기만큼 우리는 행복해졌는지 혹은 삶의 질이 좋아졌는지를 물으면 썩 그렇지는 못해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OECD가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우리나라 순위는 경제성장과 달리 하위권을 맴돈다. 심지어 2014년에는 38개국 중 25위였는데 2017년에는 29위로 오히려 순위가 떨어졌다. 특히 11개의 부문 지수 중 일과 삶의 균형에 있어서는 38개국 중 35위를 기록했다.


일과 삶의 균형은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는 데 몇몇 제약요소를 제거한다면 우리 농업·농촌은 더할 나위 없이 워라밸을 실현할 좋은 무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연간 귀농·귀촌 인구가 50만명에 육박하고, 그중 40대 이하가 50%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의 생태운동가인 시오미 나오키는 ‘반농반엑스(X)의 삶’을 주창하며 절반은 농사를 짓고 절반은 소박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농촌에서의 삶을 제안했는데, 그의 이론을 동경하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농업·농촌은 이러한 기회에 부족한 농업인력도 충당하고 농촌의 활력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 막상 워라밸을 실현하기 위해 혹은 ‘반농반X의 삶’을 살기 위해 농업·농촌에 접근하려 했을 때 부딪히는 현실의 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당장 살아갈 집을 비롯해 작은 땅을 구하는 일, 관련 취업·창업에 필요한 정보와 자금을 얻는 일, 아무 기반 없이 절반짜리 농사를 시작하는 것, 도시보다 현격히 불리한 생활 인프라, 정서적인 장벽 등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필요하다면 법과 제도를 고치고 예산을 투입해 농업·농촌이 균형 잡힌 일과 삶의 무대가 되도록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지역농협 등 유관 조직들이 함께 거버넌스를 갖춰 농촌에서의 일과 삶 모두를 만족시키는 더 나은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단지 농업·농촌에 새로 진입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농업에 종사하면서 농촌에 사는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조치다.


경제는 양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삶의 질 향상에 있어서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리고 농업·농촌은 상대적으로 국가의 경제성장에 크게 이바지했음에도 다른 부문보다 불리한 여건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다. 워라밸을 추구하고 ‘반농반X의 삶’을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이 우리 농업·농촌이 각광받는 전환점으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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