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포스트 FTA시대, 농업분야 어떻게 대비하나…
2159
기고자 지성태
농촌여성신문 기고 | 2017년 7월 21일
지 성 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2004년 4월 1일 한․칠레 FTA가 발효되고 10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농산물 수입에서 칠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업부문에 불러온 파장은 상당히 컸다. 우루과이라운드, WTO에 이은 또 다른 형태의 시장개방이었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내 과수농가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대단히 컸다. 급기야 시설포도, 복숭아, 참다래 재배농가를 대상으로 폐업지원까지 이루어졌다.
 

이후 업계마다 온도차는 있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마치 FTA가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인식되면서 FTA 체결에 몰두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농업부문에서만큼은 신규 FTA를 체결할 때마다 작지 않은 마찰을 겪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식량자급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해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FTA가 그나마 유지하고 있는 농업 생산기반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FTA 체결국 중에서도 농산물 주요 수입대상국(경제권)인 EU, 미국, 중국, 영연방 3개국(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의 FTA 체결 시 농업계는 긴장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근까지 전 세계 52개 국가와 15건의 FTA를 체결함으로써 소위 FTA ‘강국’이 되었다. 이처럼 FTA 경제영토가 확대되어 전체 수입농식품 중 80% 이상이 FTA 체결국에서 수입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FTA 이행에 따른 농업부문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FTA 국내보완대책을 수립하였다. 그 일환으로 축산․과수․원예 경쟁력 제고, 농업인 역량강화 및 경영안정, 신성장동력 창출, 직접피해 보전 등의 목적으로 80여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FTA 국내보안대책으로 26조 8천억 원의 예산이 책정되었고, 그중 약 88%가 집행되었다. 세부사업별로 차이는 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둔 사업들이 다수 존재한다. 즉, 중장기 투융자사업을 통해 우리 농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제고함으로써 FTA로 인한 충격을 어느 정도 완화하였다고 평가되어진다.
 

한편, FTA 이행으로 시장개방이 본격화되면서 수입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FTA 농어업법」 개정으로 직접피해보전제도가 본격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FTA 피해보전직불금 지급품목이 해마다 선정된 것이 단적인 예이다. 2013년 한우와 한우송아지를 필두로 2016년 당근, 노지포도, 시설포도, 블루베리에 이르기까지 총 19개 품목에 대하여 직불금이 지급되었다. 이들 품목 중 11개 품목에 대해서는 폐업지원도 이루어졌다. 향후 시장개방 폭이 더욱 확대되면서 이와 같은 FTA 직접피해는 더욱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가운데 앞으로 다수의 신규 FTA가 추가로 추진될 예정이다. 한․중미 FTA가 실질적으로 타결되었고, 한․중․일, RCEP, 한․이스라엘, 한․에콰도르 FTA가 협상 중에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포스트 FTA’를 논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칠레 FTA를 포함한 한․싱가포르, 한․EFTA, 한․아세안 FTA 등은 발효된 지 이미 10년이 지나 그 효과가 제한적이다. 또한 발효 6년차를 맞는 한․미 FTA의 경우 미국측이 개정협상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응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4차 산업혁명이 분야를 막론하고 미래 발전의 중요한 트렌드로 부각되면서 농업부문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농산물 교역으로까지 파급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포스트 FTA 시대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빅데이터, 스마트 기술 등을 활용한 4차 산업혁명은 농업의 생산단계서부터 가공․유통단계는 물론 국제 교역에 이르기까지 가치사슬(value chains) 전체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도 현재 우리 농업이 당면하고 있는 농업인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자연재해와 가축질병 발생에 따른 수급 불안정, 생산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저하 등의 문제를 해소하고,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여 농식품 소비를 촉진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 농산물 교역부문에서도 국가별, 지역별 생산․유통․소비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거래처, 가격과 품질, 유통채널 등에서 맞춤형 거래가 이루어짐으로써 수출국 생산자, 수입국 소비자, 유통업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효용이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아직까지 그 실체가 불명확하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농업분야와 농산물 교역부문에 미칠 파장에 대해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이는 수입개방을 표방한 FTA가 수입국 소비패턴 변화와 생산량 감소, 수출국 수급여건 변화, 비관세조치, 정치․외교 이슈 등 다양한 요인과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 순효과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앞으로 농업 생산 및 농산물 교역의 환경이 변화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 FTA’ 시대를 규정짓는 기준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를 맞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인간의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라고 본다. 즉, 경제활동에서 생산성, 효율성, 편리성만을 강조하다보면 그 과정에 내포된 노동의 가치가 경시될 수 있다. 소위 삼농(농업, 농촌, 농민) 중에서 농민이 기계 혹은 자동화 설비에 의해 대체되면 공간적 의미로서의 농촌은 소멸하고, 다원적 기능을 가졌던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만을 공급하는 산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사람(人)이 조화를 이룬 농업․농촌․농민을 유지하는 것이 포스트 FTA 시대를 대비하는 첫걸음이 아닐까?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