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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도 힐링(Healing)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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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지성태

 

KREI 논단 | 2014년 10월 2일
지 성 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산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 산은 찾는 이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준다. 사실 산은 계절에 상관없이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며 휴양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다시 말해, 산행은 휴식을 취하고 심신의 기력을 회복하는 기회가 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숲의 치유기능 혹은 힐링(Healing) 기능이다. 이는 숲의 공익적 기능 중의 하나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2010년 기준)은 이러한 기능을 포함한 산림의 공익적 가치를 산출하였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약 109조 원이고, 그 중 치유와 휴양 기능이 약 16조 원으로 전체 가치의 15%를 차지한다. 즉, 국민 1인당 연간 218만 원어치의 공익적 가치를 숲을 통해 누리고 있고, 그 중 32만 원은 치유 혹은 휴양의 방식으로 얻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숲을 잘 보존하기만 하면 그 가치는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하지만 숲 보존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산불, 벌목, 오염물 투기 등 인위적 요인과 산사태, 병해충, 노화 등의 자연적 요인에 의해 숲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의 훼손은 곧 치유와 휴양을 포함한 우리가 누리는 산림복지혜택이 그만큼 축소됨을 뜻한다. 얼마 전, 연구원 직원수련회를 위해 찾았던 설악산에서 이를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숲과 함께 호흡하니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말 그대로 힐링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 등산로를 따라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주위 풍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설악의 정취는 그런 치유감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를 치유케 한 소나무가 금 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누군가 소나무의 껍질을 의도적으로 도려냈고, 수피가 벗겨진 속살은 고사한 나무마냥 말라버렸다. 더 이상한 건 이처럼 온전치 못한 소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니라 흔들바위-울산바위 구간 대부분의 소나무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 광경은 호기심을 넘어 불쾌감마저 들게 했다.
 

설악산 소나무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흔(傷痕)은 일제강점기에 연료 대용으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이처럼 상처 입은 소나무가 설악산 외에도 백두대간 곳곳에 산재해있다는 점이다. 반세기가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지금껏 연명해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외과적 상처뿐만 아니라 역사의 아픔까지도 치유 받아야 할 대상이 바로 이 소나무들이 아닌가 싶다.
 

수피가 벗겨진 나무는 병해충에 의한 2차 감염에 취약하고,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상처는 나무의 정상적 생장을 저해한다. 실제로 이미 고사했거나 상처부위가 갈라지고 벌레의 공격을 받은 소나무가 적지 않았다. 치료가 매우 시급해 보였다. 문제는 비용이다. 물론 나무가 주는 효용이 비용보다 높다고 판단될 때 치료를 위한 비용이 투입될 것이다. 이러한 사후적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숲의 보호․보전을 위한 사전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나무와 숲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생관계를 유지할 때 숲의 치유기능이 극대화된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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