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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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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업과 식품산업이 가야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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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진수
농경나눔터 농정포커스 | 2011년 11월호
김 진 수  (CJ 제일제당 상담역)

 

 ‘농(農)’이란 한자를 볼 때 ‘곡(曲)’자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곡(曲)은 직(直)의 반대어인데, 직이 “효율과 스피드, 인공과 단기적”이란 의미를 품고 있는 반면 곡은 “돌아가는 듯 하지만 자연적이고 지혜롭다.”란 함의가 있다. 직이 공업을 말한다면, 곡은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원하는 농산물 만들어야

 

 농업에 대한 대책을 논할 때 단기적이거나 계량적 수치를 따지는 득실 계산에 바탕을 둔 비교우위나 열위와 같은 사상으로 접근하면 곤란하다. 농업은 우리의 먹을거리에 관한 것이고 생존과 1차적으로 관련된 산업으로서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성질의 영역이 아니다.

 

 농업을 죽이지 않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부터 벗어나 우리 농업의 경쟁력이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공격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 농업과 식품의 갈 길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 농업은 20년 계획을 갖고 친환경 유기농으로 전환해야 한다. 힘들고 안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꼭 가야할 길이다. 농업도 비즈니스로서의 제1원칙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소비자가 화학비료나 제초제로 키운 작물을 좋아하겠는가? 또 누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원하겠는가?

 

 인공보다는 양(量)과 질(質), 동물성보다는 식물성을 좋아하는 메가트렌드가 있는데 단지 손쉽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현재의 농법에 머문다면 우리농업은 영원히 국토가 넓은 나라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서유럽 농업강국들은 낙농의 이미지가 강하고 뉴질랜드는 청정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20년에 걸쳐 친환경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인다면 무엇보다도 값진 국가 브랜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바로 ‘건강한 친환경 유기농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로마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유명한 말인 ‘Festina Lente(천천히 서둘러라)’로 접근하면 좋을 것이다. 농업개혁은 위정자의 임기 내에 성과를 내고자 하면 백 번 실패한다. 네 차례의 5개년 계획으로 20년 걸릴 각오로 접근하자. 이렇게 천천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5개년 계획 내에 추진해야 할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원대한 계획 내에 세부실천 로드맵을 작성하여 관련법과 예산마련 대책, 소단위의 시뮬레이션으로 성공의 실증증거 확보, 농업 인재양성 등이 중요한 과제로 매우 서둘러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서둘러라’이다. 밤을 새워 벤치마킹하고 토론하고 실험해야 한다.

 

발효 식품을 국가브랜드화 해야

 

 식품의 갈 길은 더욱 뚜렷하다. 우리나라의 강점을 강화해야 한다. 바로 발효식품을 국가브랜드화 하는 것이다. 우리 식품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김치와 장류는 물론 젓갈류 전통 조미양념 등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의 발표식품 국가에 살고 있다. 이것이 조상이 물려 준 대단한 건강식품인데 지금 선진국 학계에서는 누구나 프로바이오틱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점 강화와 집중의 전략으로 발효식품에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떠다니는 미생물부터 과학적으로 확보하는 기초 저변 노력에서부터 발효 숙성을 위한 조건 설정의 치밀한 세분화 작업이 있어야 한다. 발효는 바로 건강이고 맛이며 자연친화적 생산성의 원칙이기에 글로벌 유망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발효 식품의 국가브랜드화로 농업의 유기농 20년 대계(大計)에 맞춰 로드맵을 갖고 접근하면 좋을 것이다.

 

 한국식품은 맛이고 건강이다. 이런 면에서 가히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식세계화를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한다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그런데 한식세계화와 같은 문화전파운동은 몇 년 새에 불꽃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한식세계화 역시 20년 이상의 긴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하며 우선 접근 방법론에 대한 신중한 판단이 선결되어야 한다.

 

 우선 한식 개념을 어떻게 나누어서 세계인에게 알려야 할까 고민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정통(Authentic) 한식과 비빔밥과 불고기버거 같은 편의식으로서 한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의식은 그때그때 고객의 욕구에 따라 응용될 수 있으며 국가마다 적절히 퓨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통 한식은 쉽게 절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래 우리 음식은 양식과 같이 순서대로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한상 위에서 밥, 국, 주반찬, 밑반찬, 젓갈류도 함께 나온다. 그리고 음식의 간은 먹는 사람이 알아서 맞춰 먹는다. 먹는 사람이 따라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특징으로 창의성 있는 식사문화가 그 바탕이다. 세계인에게 가르쳐 주기 어렵다거나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문화적 파워는 대단할 것이다. 표준은 대한민국이 만들어 간다. 한식세계화를 하려면 그 외에도 기준 내지 표준을 먼저 두렷이 세워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기본이 튼튼하면 그 이후의 속도는 붙일 수 있다. 그러나 기본틀이 약하면 오래지나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이것이 먹는문화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는 붐이 되고 만다. 마치 프렌차이즈 본부에서 뚜렷한 행동매뉴얼과 표준에 의해 일하는 실증적 검증없이 가맹점을 늘리면 얼마 못가서 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덤벙대면서 서두르는 한식세계화는 뿌리는 없는 것이 되고 낭비만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20년 이상의 계획에 의해서 추진해야 할 것이 바로 한식세계화이다.

 

 노자는 “곡즉전(曲則全: 굽은 것은 온전하다)”이라고 하였다. 자연의 섭리인 ‘곡(曲)’의 지혜를 실현하기 위해서 천천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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