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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 타결 실패’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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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문한필
KREI 논단| 2011년 7월 19일
문 한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올해 초 세계무역기구(WTO)는 10년 이상 끌어온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연내 타결을 목표로 잔여쟁점들에 대한 막바지 협상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말에 WTO는 DDA 협상의 연내 타결이 어렵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공산품 개방 수준에 대한 미국과 신흥개도국인 중국, 인도, 브라질 등의 입장 차이가 전혀 좁혀지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이다. 비농산물 시장접근 분야(NAMA)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적절히 타협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파스칼 라미 WTO 사무총장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DDA 협상은 또 다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2008년에 이어 이번 DDA 협상 결렬의 파장은 상당히 크다. 일부에서는 DDA 협상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며 이대로 중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또한, WTO가 추구하는 다자무역체제의 구축은 애당초 실현불가능한 이상이었던 것이 확인된 만큼, 본연의 목적인 분쟁해결이나 감시·감독 등의 역할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다수의 회원국들은 현재 DDA 협상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지만 그렇다고 협상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으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지금까지 이루어 온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DDA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근본 이유는 주요 회원국의 이기적인 자세와 정치적 의지의 부족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간 합의를 바탕으로 타결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때와는 달리 신흥개도국들의 입지가 커진 동시에 세계경제를 이끌어 왔던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것도 현실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DDA 협상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상태로 지속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UR 또한 타결되기까지 7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더욱이 UR 이후 최근의 금융위기까지 각국은 자국 산업에 대한 지원과 국내경제의 회복에 주력하여 온 측면이 강했다. 역사적으로도 세계경제가 보호주의 경향이 만연하여 동반 침체가 우려될 경우 다자무역체제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무역자유화가 중요한 화두가 되어왔다. UR 협상에 비해 각국의 이해관계가 훨씬 복잡해지고, 협상의 범위와 목표수준이 더욱 진일보한 DDA 협상이 길어지는 것은 한 편으로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타결 직전까지 여러 번 도달했던 DDA는 여건이 조성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타결될 것으로 봐야한다.

 

  그렇다면 향후 DDA 협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일단 내년에는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인도 등 주요국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DDA와 같이 국내정치에서 민감한 무역 현안이 쟁점화 되는 상황을 피할 것이기 때문에 2013년 하반기에나 DDA 협상이 본격적으로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WTO는 이때까지 DDA 협상이 중단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 회원국 간 이견이 적은 분야부터 타결하는 조기수확 프로그램을 시도하기로 하였다. 라미 사무총장도 최빈국 문제와 같이 시급하면서도 회원국 간 타협이 가능한 부분(Small Package)부터 우선적으로 타결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농업분야에서도 최빈국들이 시급히 요구하는 면화문제나 사실상 합의에 도달한 일부 쟁점들이 이러한 조기수확 프로그램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업분야 내의 여러 쟁점들이 사실상 연계되어 있고 전체 협상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가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이다. 단, 협상의 불씨를 살려나간다는 긍정적인 역할은 할 것으로 보인다.

 

  DDA 타결 지연이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농업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UR 협상 당시에도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한국은 개도국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우리나라는 농업이 낙후되어 있어 농업협상에서는 개도국으로 인정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관철시킨 경험이 있다. 개도국에 대한 특별대우나 예외조치를 대폭 늘린 DDA 농업분야 협상에서 개도국이냐 선진국이냐의 차이는 UR 협정과 비교해서 국내농업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개도국 지위의 확보가 가장 큰 협상목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DDA 협상 과정에서 농산물 수출국 모임인 케언즈 그룹과 수출개도국 그룹인 G20, 그리고 회원국의 절반 이상이 우리나라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EU 등은 이미 여러 차례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에 큰 불만을 내비쳐 왔다. 협상 초기인 2001년에 비해, 2013년 이후에 우리의 농업여건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주요국들을 설득하기 위해 양보해야 하는 것들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 현실적으로 회원국들의 반감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나라는 개도국 지위를 완전하게 누리기보다는, 국내농업에 미치는 피해가 작은 범위 내에서 자발적으로 선진국 의무사항에 참여하거나, 개도국 권리를 축소하는 식의 대안을 고려하여야 한다.

 

  무역의존도가 80%를 넘는 우리나라는 DDA와 같은 다자무역체제의 진전이 지체되면서 당분간 통상정책의 우선순위는 FTA 추진에 두어질 것이다. 사실 농업분야의 경우 DDA보다는 FTA가 당장 직면한 위협이다. 최근의 한·EU FTA 발효, 한·미 FTA 비준 예정, 한·중 FTA 협상 준비 등으로 인해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품목에서 향후 20년 이내에 해당국 수입농산물에 대한 관세가 철폐될 것이다. 이는 분명 10년 동안 품목별로 33.3~46.7%의 관세감축률을 제시하고 있는 DDA(개도국 기준)에 비해 큰 규모의 시장개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DDA는 WTO의 모든 회원국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관세인하 의무를 부여하며, FTA와 달리 국내보조금의 감축 또한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FTA 못지 않게 국내농업에 미치는 파장이 클 수 있다. 특히, 선진국 기준으로 DDA가 타결될 경우 그 파급효과는 개별 FTA를 능가할 것이다. 따라서, DDA 이행에 앞서 어느 정도의 추가 시간을 확보한 만큼, 이 기간 동안 우리 농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국내농업보조의 체계를 개편하는 선제적 대응을 모색하여야 한다. 쌀 변동직불금의 블루박스로 전환을 포함한 현행 감축대상보조의 축소 및 허용보조로의 전환, 쌀 관세화 조기전환 등이 서둘러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또한, 우리 시장의 문턱이 낮아지는 만큼 해외시장의 문턱도 낮아지기 때문에 국내 농산물의 수출확대를 위한 정책지원과 농업인들의 수출조직화, 신품종 개발, 생산비 절감 등 자체적인 경쟁력 향상에 힘써야 할 때이다. 우리에게는 2~3년의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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