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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량난이 왜 한미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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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권태진
세계일보 오피니언 | 2011년 4월 30일
권 태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북한 식량난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최근 발표된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식량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과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이 중단되고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됐다는 투의 내용이 기술돼 있다. 앞뒤 상황만을 비교해 보면 틀린 말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한국의 대북 식량지원 중단이 북한 식량난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한마디로 북한의 식량난은 북한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지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하지 않아서도,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해서도 아니다. 북한이 한해 수입하는 곡물은 대략 20∼30만t으로 연간 소비량의 5% 내외이다. 수입액도 많아야 1억 달러 남짓이다. 이를 두고 곡물가격이 너무 올라 식량난이 심각해졌다고 한다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한국은 2000년부터 연간 40∼50만t 규모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2008년 이후 중단됐다. 되풀이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다 지원된 식량의 분배 투명성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중반 북한에 50만t 규모의 식량지원계획을 발표하고 지원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2009년 3월 돌연 식량지원을 중단했다. 북한이 당초 약속했던 모니터링 절차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 모두 북한 측 문제로 인해 중단된 것이다.

 

한 국가의 식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인도주의 차원의 지원 원칙과 맞지 않는다. 인도주의 지원에도 원칙과 규범이 있다. 한 국가가 인도주의 명분으로 지원받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설명하고 상대 국가나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지원 요청을 받은 국가는 먼저 수원국(受援國)의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자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원하는 물자가 수혜자(受惠者)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확인하기 위한 절차를 수원국과 협의한다. 이를 모니터링이라고 하는데, 모든 인도주의 지원에는 이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인도주의 지원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원을 통해 수혜자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확인하는 평가 절차가 남아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한 장치이다.

 

현재 북한에는 식량이 부족하고 일부 취약계층은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국제사회가 북한에 당장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충분한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가는 자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존엄을 보장할 책무가 있다. 북한은 먼저 이를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 국민의 안전과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지원코자 하는 나라의 국민은 그들의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고자 한다면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 원칙과 규범을 수용하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지원된 식량이 특권층이 아니라 취약계층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어야 국제사회는 비로소 북한의 식량 지원요청에 호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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