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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와 나와의 관계에서 농업 해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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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정호근
농민신문 기고| 2010년  11월  8일
 정 호 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농산물 수입이 계속해서 늘고 가공에 사용하는 원료 농산물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거리적, 시간적으로 분리되면서 운송, 저장, 포장, 판매 등을 담당하는 유통의 중요성이 커졌고, 유통마진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최근 유럽농업인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원료 농산물의 소비지 판매액 중 20% 정도가 농가에 돌아가는 것으로 나와 있다. 농가는 생산한 농산물을 팔기도 어렵고, 설사 판다고 해도 적정 이윤을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유통비용을 줄여 소비자가격을 낮추고, 농산물 판매마진에서 생산자 몫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전자상거래, 소비자 직거래 등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거래방식이 미미하며 성장 속도도 더디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해법을 최근의 개인적 경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직도 이발소만을 고집하는 관계로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자그마한 이발소에 정례적으로 다닌다. 그러던 중에 이발사 부인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동안 이발소가 문을 닫아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더니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와 있다는 이발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그날 오후 이발사는 나에게 ‘이발하러 와도 된다’며 전화를 했고, 간만에 이발을 할 수 있었다. 이발사는 “병원에 와 있는 자식들로부터 어머니가 이렇게 위독한데 이발이 대수냐며 혼났다”면서 “이발은 내 직업이고 손님이 나를 인정해 찾아 주는데 어찌 안 가볼 수 있겠느냐”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발을 끝낸 이발사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그로부터 이틀 뒤 부인이 운명을 달리했다. 그 일을 계기로 이발사와는 서비스를 사고파는 단순한 거래관계에서 신뢰라 부르는 상거래 이외의 무언가로 발전한 것 같다.

 

시장개방으로 저렴한 외국 농산물 수입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 여러나라에서 국내산 농산물을 애용하자는 지산지소, 로컬푸드, 신토불이 등의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익숙한 입맛은 어찌 보면 이발소에 익숙해진 특유의 가위 소리, 안면 면도, 머리 감겨 주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내산을 더 선호하고, 필요하다면 약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도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가격 신뢰, 품질의 신뢰관계가 더해진다면 농업이 안고 있는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다.

 

당사자간의 자발적인 노력에 적절한 정부 정책이 더해지면 신뢰관계 구축이 좀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생산에서 소비까지의 과정을 투명하게 해 주는 농산물이력제를 강화하고, 전자상거래 등의 직거래 방식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생산물에 대한 품질인증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인증농업인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부 농업인에 대해 기술, 경영측면에서 부여하던 농식품부의 신지식농업인, 농촌진흥청의 최고농업기술 명인 등을 전 농업인을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생산기술뿐만 아니라 농업가치에 대한 이해 등에서 일정 자격조건을 갖춘 사람에 한해 상업적 영농자격을 부여하고, 소비자 피드백 등을 통해 이를 단계화해 나가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농업인에 대한 이해와 관심 정도도 이와 맞물려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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