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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부문 위기관리시스템 정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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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호
농민신문 기고| 2010년 5월 28일
김 정 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올봄의 농촌은 가히 위기상황이라고 할 만하다. 이상기후에 구제역까지 겹쳐 농심은 크게 멍들었다. 4월 중순에 철모르는 눈이 내려 농작물이나 과수의 새순과 꽃들이 동해를 입었고, 1월 하순에 멈췄던 구제역이 4월 초부터 다시 확산돼 많은 가축들이 허탈하게 생매장을 당해야 했다.

 

겨울철 한파에 이어 계속된 저온현상으로 농작물의 생육이 지연되고, 시설 농가는 난방비 부담으로 속성재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참외나 수박과 같은 과채류는 일조량 부족으로 열매가 크지 못했고, 난생처음 황당한 사태를 경험하게 된 독농가들의 탄식이 절박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조사에 의하면 기상이변으로 시설채소 면적의 4분의1 정도인 1만4,000㏊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숭아·배 등의 과일은 아직 열매가 달리지 않아 피해 규모를 판단하기 어렵지만, 어린가지가 동해를 입어 열매를 제대로 맺을지 걱정이다. 가을철의 과일값 상승이 예견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과일의 주산지가 북상하는 추세에도 당분간 제동이 걸릴 것 같다.

 

이번 구제역은 소뿐만 아니라 돼지까지 전염되는 O형 바이러스로 확산이 빨랐다. 아직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실정이므로 감염된 가축은 물론 그 주변의 가축들도 살처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축 사육환경을 청결히 하고 상시 방역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농축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도 컸다. ‘금치’를 담가야 할 정도로 장바구니 물가가 급등하는데다 구제역 발생으로 식품안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소비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우리 농산물이 설 땅이 없다. 국민이 양적·질적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식품 공급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 지출도 만만치 않다. 구제역의 피해액을 추계해 보면, 살처분 보상금·가축 수매자금·방제비용 등을 합해 지난 2000년에는 3,000억원, 2002년에는 1,400억원이 지출됐는데 올해에는 벌써 살처분 보상금만 700억원을 초과했다고 한다. 번번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데, 가축 방역체계를 철저하게 갖춰 놓는 것이 재정 낭비를 줄이고 효율성도 높이는 방안이 아닐까.

 

자연에 의존해야 하는 농업이지만, 언제까지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를 탓할 수만은 없다. 이번 기회에 농업부문의 위기관리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전 대책으로 농축산물의 생산과 유통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을 강화해야 한다. 또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신속하게 대비하기 위한 조기예보체계를 갖춰야 한다. 위기 발생시 정부와 농업인 모두가 적확하게 대응하는 행동지침 매뉴얼(안내서)이 작성돼야 하고, 위기가 종료된 사후 대책으로 과학적인 피해보상을 위한 방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재담가들은 위기를 ‘위험’과 ‘기회’의 준말이라고 말한다. 위기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이를 극복하려는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위기관리(crisis management)를 통해 보다 성숙된 한국 농업의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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