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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쌀을 보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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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뉴스레터 오피니언| 2009년 11월
권 태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11월 17일 전국 15,000여 명의 농민단체 회원들이 여의도공원에서 농민대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농업인들은 쌀 값 폭락의 원인이 대북 쌀 지원 중단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에 대북 쌀 지원 등 쌀 값 대책을 촉구하였다.필자는 농업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과연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우리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업인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을 살려내라고 북한 당국에게도 함께 호소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한국, 국제사회 대북 지원 1/3 차지

 

북한의 식량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대규모의 아사자가 북한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지 십 수 년이 지났건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북한주민을 위해 식량을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기조차 싫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1995년부터 북한에 식량지원을 개시하여 1999년에는 그 양이 연간 100만 톤에 이르렀으며 2001년에는 150만 톤에 달하기도 하였다. 북한의 연간 식량소요량을 520만 톤이라고 가정하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어 2000년부터 차관 형식으로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였다. 지금까지 북한에 차관으로 제공된 쌀이 240만 톤, 옥수수가 20만 톤이다. 정부는 차관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직접지원 또는 유엔기구를 통한 다자지원 형태로도 80여 만 톤의 식량을 지원하였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에 지원한 식량이 340만 톤에 달한다. 이는 전체 국제사회가 북한에 지원한 식량의 1/3에 해당한다.

2005년 북한은 불쑥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평양에 상주하던 유엔 직원 및 국제민간구호단체 대표를 추방해버렸다. 그들이 지원한 식량의 분배 투명성을 확인하는 절차와 방식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국제사회가 식량위기에 직면한 국가에게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분배의 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링을 요구하는 것이 원칙이고 북한도 예외일 수 없다. 사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은 다른 나라와 동등한 수준의 모니터링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불만을 품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무시하는 처사다.

 

북한, 태도 바꿔야

 

북한이 취한 행동은 곧바로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 급감이란 결과를 낳았다. 2006년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량은 전년의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2007년에도 한국의 대북 쌀 지원이 없었더라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2008년과 2009년은 한국의 대북 식량차관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총 지원량은 30만 톤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런데 마침 북한은 2007년 큰 규모의 홍수피해를 당했고 2008년에는 좋은 기상여건 하에서도 겨우 평년작 정도의 작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년에는 비료 부족으로 인하여 2002년 이후 가장 저조한 작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다가 1990년 중반과 같은 위기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대북 쌀 지원은 우리가 중단했다기보다는 북한이 먼저 거절했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른다. 우리 농업인들이 주장하듯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이 재개되려면 북한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대북 쌀 지원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금년부터 정부는 대북 식량지원 정책을 기존의 차관형식에서 무상지원으로 전환하였다. 이제 북한에 쌀을 외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에 따라 대북 쌀 지원이 일어나려면 북한이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에 동의해야 한다.

 

인도지원 원칙 중요

 

첫째, 북한의 누구에게 쌀을 나누어 줄 것인지 대상자를 명확히 선정해야 한다. 즉, 수혜자가 명확히 설정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지원된 쌀이 선정된 대상자에 제대로 분배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분배투명성을 확인하기 위한 모니터링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수혜자가 지원된 식량을 섭취하고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식량지원의 효과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를 영양조사의 방식으로 확인한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원한다면 이 정도는 동의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이와 같은 기준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유독 북한만이 예외일 수 없다. 우리 정부에 대해 대북 쌀 지원을 촉구하기 이전에 먼저 북한 당국에 우리 국민의 뜻을 전달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남북한의 특수성을 강조한 나머지 한국의 대북지원 관행이 국제사회의 질서를 흩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인도지원 원칙을 어길 경우 북한 주민은 물론이고 지구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량이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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