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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슬레이트와 농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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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한국일보  기고| 2009년  4월  16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석면의 위해성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1960~70년대 '기적의 물질'로 불리던 석면은 1987년 세계보건기구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이래 선진국에서는 사용을 전면 규제하고 있다. 우리도 건축자재와 자동차부품, 섬유제품 등에 널리 쓰던 석면이 폐암, 석면폐 등을 유발하는 물질로 알려지면서 올해부터 석면이 0.1%이상 함유된 제품의 제조ㆍ수입과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또 석면함유 1%를 초과하는 건축물을 노동부장관 허가 없이 해체, 제거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에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농촌지역의 경우, 가옥은 물론 축사나 창고의 지붕에 올려진 슬레이트가 석면을 무려 10%정도나 함유한 위해물질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1972년부터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매년 40만호씩 6년간 240만호의 지붕을 개량하였고, 그 가운데 적지 않은 농가가 석면슬레이트를 얹었다.

 

당시 농가의 80% 이상이 초가 지붕이었는데 새로운 볏짚으로 교체하는 것은 겨울동안 해야 할 가장 큰 일 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볏짚은 소 먹이였을 뿐만 아니라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었던 가마니와 새끼의 재료로 쓰는 귀한 자원이었다. 해마다 낡은 지붕을 교체하는 수고도 덜고 소중한 볏짚까지 아낄 수 있으니, 어려운 시골 살림에도 많은 농민들이 자기부담으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었다.

 

슬레이트는 시멘트와 석면을 섞어 굳힌 것으로 석면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슬레이트를 절단하거나 부스러지면 공기 중에 석면 먼지가 떠다니게 되고, 이를 흡입하면 10~30년의 잠복기를 거쳐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초기 새마을운동을 통해 지붕개량을 한 농촌주택의 상당수는 기와나 슬라브 등 다른 자재로 바꾸었다.

 

하지만 영화 '워낭소리'에 나오는 최 노인네 집처럼 슬레이트 지붕을 유지하거나, 반쯤은 부서진 채 버려진 집도 적지 않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풍화작용으로 가루가 날리게 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 농촌에서는 낡은 집을 수리할 때 나오는 슬레이트 조각을 아무데나 버리거나, 심지어 슬레이트 판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농촌의 석면슬레이트 지붕을 한시 바삐 고쳐야 한다. 일정한 수입도 없는 농촌 노인들이 자기 돈을 들여 지붕을 고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06년부터 전라남도는 슬레이트 지붕을 친환경 자재로 바꾸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힘만으로 지붕을 비롯한 주택 개량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가 농촌의 슬레이트지붕 실태를 파악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독거 노인이 많은 농촌지역의 실정을 고려하여 공동임대주택을 마련해주거나, 전통한옥을 기본으로 한 농촌주택 모델을 보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양열이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과 같은 환경친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농촌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주기 바란다. 국민소득 250달러 시대에 지은 낡고 위험한 집에 사는 농민의 현실을 외면한 채 '삶의 질'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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