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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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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vs 고춧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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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성훈
KREI 논단| 2009년 4월 13일
김 성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1970년대 말 중국이 경제정책의 기조를 결정할 때 실용주의와 사회주의 노선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경제 발전을 위해 사회주의 이념을 일부 양보할 필요가 있다는 쪽과 국가 이념인 사회주의 노선에서 한 치도 물러날 수 없다는 쪽이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이때 유명한 말이 하나 생겨났는데, 이른바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다. 즉,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라는 그의 생각은 국가 부흥을 위해서는 사상적 양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농식품 수출”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2012년까지 농식품 수출 100억불 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고, 한식 세계화를 통한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 확대를 위한 노력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식재료 수출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꼭 필요한 사업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한식 세계화 등에 전력투구하는 것이 과연 식재료 수출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세계의 향신료(Spice)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 그 중 고추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해당 방송을 보고 새로 알게 된 점은 우리나라 청양고추가 세계적으로는 중간 정도의 매운맛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고추 또는 고추 가공제품 소비가 멕시코 등의 미주지역에서 헝가리 등의 유럽지역까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헝가리의 전통음식인 굴라쉬 스프(Hungarian Goulasch Soup)는 우리나라 육개장 이상으로 매운 맛이라고 하니 한번 먹어보고 싶기도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고추의 매운맛이 실제로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맛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고추의 매운맛을 알기 시작한 시기는 불과 약 400년 전의 일로, 과거에는 고추가 우리에게도 생소한 식품이었던 것이다.

 

다시 식재료 수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농식품 수출 100억불 달성이나 한식 세계화 등을 추진하는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농림축수산물의 신규 수요 창출 및 부가가치 창출 등이 주요 사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한식 세계화를 통한 국산 식재료 수출 확대가 - 그 당위성에는 100% 공감하지만 - 과연 가장 효과적인지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고추장을 수출하는 것과 고춧가루를 수출하는 것 중 어느 것이 우리나라 고추 농가에 더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해외 잠재 시장규모를 보면 고추장은 한식의 식재료 시장으로 한정되는 반면, 고춧가루는 한식 식재료뿐만 아니라 현지식용 식재료(양념류) 시장까지 공략이 가능한 점과 실제 우리나라 고추장에 들어가는 국산 농산물의 원료 비중이 생각보다 크게 낮은 점 등은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식 세계화가 전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한식 세계화가 식재료를 포함한 농식품 수출에 대한 일종의 이념으로까지 확대되어, 모든 논의와 정책이 그쪽으로 편중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정부의 농식품 수출 관련 정책이 과연 우리 생산 농가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농식품 수출은 우리 농산물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비싸게 팔기 위한 '장사'이고, 이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덩샤오핑의 유연성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고추장이 한식과 함께 서양인의 식탁 위에 오르는 것보다, 우리나라 고춧가루가 스테이크나 샐러드용 양념으로 끼어드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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