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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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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량문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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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권태진
KREI 논단| 2009년  1월  15일
권 태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우리는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곡물과 에너지 파동, 금융과 실물경기 침체라는 위기의 한가운데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 동안 곡물과 에너지 파동은 가라앉고 금융 위기도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들어섰으나, 금년에는 경제 침체와 성장률 둔화, 실업률 증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드리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을 보면 여느 해보다도 희망 섞인 구호가 눈에 많이 띈다. 현재의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게다. “총진군의 나팔소리 높이 울리며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사설 제목처럼 북한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과 김정일의 고희를 맞는 2012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원년으로 삼고 싶어 한다. 불과 3년 후면 2012년을 맞이하는데 과연 이러한 비전을 실현할 수 있을까? 비전은 백성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지만 자칫 백성을 기만하는 도구로 이용될 수도 있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민의 아사를 걱정했다. 그들을 아끼는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다행히 대량 아사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먹는 문제가 순탄하게 넘어갔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평야지대의 농민조차 풀뿌리에 의존해야만 했던 안타까운 상황이 이어졌다. 농민이 이럴진대 배급 의존도가 높은 도시 주민은 어땠을까.

 

  금년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좀 나아질까? 다행히 지난해는 기상여건이 좋았다. 태풍이나 호우 피해도 거의 없었다. 비료 부족으로 흉작을 걱정했지만 자연조건이 워낙 좋아 풍작은 아니지만 흉작은 면할 수가 있었다. 2009년에 공급될 자체 식량은 420만 톤 내외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통상적인 수입 20~30만 톤을 더하면 450만 톤까지는 자체적으로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렇지만 연간 필요한 최소 곡물 소요량 520만 톤을 채우려면 70여 만 톤이 부족하다. 이 부족량은 북한의 능력 밖이다. 지난해만 해도 북한 당국은 50~60만 톤 정도의 기초재고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북한은 곡물 재고의 대부분을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금년에는 국제사회 말고는 더 이상 기댈 데가 없다.

 

  과거와는 달리 북한의 맹방이라는 중국조차도 더 이상 북한에 식량을 무상으로 지원하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도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 터라 이러한 조짐이 나타나지 않는 한 적극적인 식량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은 북한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지 오래다. 지난해 미국은 2009년 말까지 북한에 대해 총 50만 톤의 곡물을 지원하기로 결정하고 2008년 양곡연도 동안 총 118,000톤의 식량을 제공하였다. 이변이 없는 한 나머지 물량 38만 여 톤은 금년에 지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식량지원이 큰 보탬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지원을 감안할 때 북한은 30여 만 톤의 식량만 추가로 확보하면 금년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기초식량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며 금년 농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보다는 더 많은 양의 식량을 확보해야만 기본적인 식량안보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금년부터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시장을 폐쇄하고 열흘에 한번씩 서는 농민시장만을 인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근까지 도시 주민은 필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시장에서 조달하였으나 금년부터는 국영 유통망을 통해 모자라는 식량을 조달해야 한다. 북한 당국은 시장을 통제함으로써 주민의 해이된 사상을 바로 잡고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유도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재건코자 한다. 이런 정책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이 식량을 포함한 생활필수품을 충분히 확보하고 이를 주민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벌써부터 주민 생활이 걱정된다.

 

  주민들은 정상적인 경제 활동에만 전념할 경우 가구당  월 만원도 안 되는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꾸려갈 수가 없다. 아무리 적어도 한 달에 5~6만의 수입은 있어야 생계를 꾸려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느 주민인들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하여 본업에 열중할 수 있겠는가. 주민들은 자연히 직장을 이탈하여 시장 활동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장사가 되었던 품팔이가 되었던 시장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주민은 믿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정권보다도 시장을 더 신뢰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삶에 희망과 믿음을 주었던 시장이 폐쇄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새로이 형성되기 마련인 암시장의 물가는 크게 올라 구매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주민 입장에서는 국가의 식량수급보다도 시장 상황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런 저런 점을 감안해보면 겉보기에는 금년도 북한의 식량수급이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주민들로서는 어쩌면 더욱 어려운 한 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을 차관에서 무상 지원 형태로 전환코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식량을 무상으로 전환할 때 꼭 챙겨야 할 점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다. 만일 이것이 보장되지 않고 확인할 수 없다면, 현재의 지원 형태가 더욱 바람한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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