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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발전을 위해 넘어야 할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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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최정섭
농민신문 시론 | 2007-06-13
최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성벽은 남한산성이건 만리장성이건 수비 측에는 보호벽이지만 공격 측에는 장애물이다. 우리 농업을 보호하던 관세와 비관세의 벽은 급속히 사라지는 반면, 크고 작은 벽들이 농업 발전을 첩첩이 가로막고 있다. 농업이 ‘식량 생산’ ‘농업 소득원’ ‘다원적 기능’의 세가지 기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벽을 잘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선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여건 변화의 벽’이 농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세계화는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을 심화시키는 거대한 흐름이다. 이는 농산물 가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반면,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키고 농산물 해외 수출의 필요성을 제고시킨다. 또 다른 흐름인 지식 사회화는 농산물의 생산·유통·소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의식의 벽’도 높다. 과거에는 정부에 대한 농민의 불신 때문에 정책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는 비농업계가 농업계를 불신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의 진행으로 농업의 비중이 계속 낮아짐에 따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약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다 보니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농업 발전 앞에는 ‘유통과 소비자의 벽’이 가로놓여 있다. 농산물 유통 분야의 가장 큰 변화는 대형 소매점의 교섭력이 커지면서 도매시장의 기능을 대체하고, 농산물시장을 구매자시장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점이다.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은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급격히 서구 선진국을 닮아가고 있다. 생산자들은 유통 조직을 통해 전달되는 소비자의 취향을 살피고, 이에 맞춰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농업 내부적으로는 ‘조직의 벽’이 높다. 우리 농업의 여건상 개별 농가의 규모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소규모 가족농이 대형 소매업체에 대응하는 교섭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직화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나 산지 농민의 조직화에는 노령화와 리더십 부족에 따른 제약 조건이 많다.

작목 구성은 ‘쌀의 벽’을 넘어야만 한다. 논 농업은 우리의 지리와 기후에 따른 역사적 산물이다. 〈통일벼〉 개발과 보급으로 쌀 자급을 달성했지만 소비자들이 외면하여 보급이 중단되었다. 지금은 1인당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심각한 쌀 수급 격차 문제에 처하게 되었다. 더욱이 2014년 말 이후에는 쌀 수입을 관세화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불균형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쌀 소비량 감소의 속도를 줄이고, 대체 작목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가장 넘기 어려운 농업의 벽은 농업 자체가 가지는 ‘1차 산업의 벽’이다. 이제는 ‘벼농사’만으로는 비농업 종사자와 대등한 소득을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쌀 생산농가들은 개별적이건 조직을 통해서건 ‘쌀가게’로 변모해야만 한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농식품의 가치에서 원료 농산물의 비중은 점차 낮아지고 가공과 서비스에서 더 큰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따라서 농업이 원료 생산에서 벗어나 최종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공급하는 2차·3차 산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 농업에는 ‘수출국의 벽’ ‘후계자의 벽’ ‘도·농 격차의 벽’ 등의 어려운 문제도 남아 있다. 농업 발전을 위해서 일부의 벽은 무너뜨리거나 넘어가는 정면 돌파를 시도해야 하고, 일부는 우회해야 하며, 어떤 벽은 인정하고 공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농업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앞에 놓인 벽의 실상을 파악하고, 극복 방안을 찾는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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