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농촌이 약속해줄 매력요소 발굴이 도시민 유치의 출발
8842
기고자 성주인

KREI 논단 [2007-05-21]

연구원 홈페이지 기고

농촌이 약속해줄 매력요소 발굴이 도시민 유치의 출발

성 주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
 

1997년 말 밀려온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도시에서 생계 기반을 잃고 귀농한 사람들이 크게 늘어난 때가 있었다. 방송이나 신문 등의 대중매체에서도 귀농에 대해 심심치 않게 다루어 그것이 사회적인 트렌드로까지 여겨질 정도였다.

  

농촌에서 살아가자면 나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기에 잠재적인 귀농 희망자들에게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하라는 의미에서인지 어느 신문에는 일종의 ‘귀농 소질 테스트’라 할 수 있는 질문지가 실렸던 기억이 난다. 농촌 생활을 위한 몸과 마음의 자세가 갖추어져 있는지 시험하는 일련의 질문들에 답해보고 점수를 매겨서 독자가 귀농 적격자인지 여부를 스스로 판단토록 하는 기사였다.

 

해당 기사의 질문 내용 중에는 ‘유행하는 최신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지 않아도 된다’든지 ‘매일같이 샤워를 하지 않고도 잠자리에 들 수 있다’든지 하는 항목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 삼아 테스트 해 보았더니 당시 필자의 귀농 적격 점수는 대략 60점 정도였다. ‘힘들어도 그냥 참고 도시에 살라’는 것이 아마 그 정도 점수대 응답자에게 내려진 진단이었던 것 같다. 누가 문항을 설계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귀농 적합 여부에 대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진단방법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 질문들은 대개 농촌 생활이 그만큼 고달프고 험난한 것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외환위기 무렵의 귀농인들 중에 이런 종류의 테스트를 현실에서 감당 해 낼 만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으로 귀농해간 사람들 상당수가 외환위기를 탈출할 즈음에 도시에서 다시 재기할 조건이 갖추어지자 농촌을 떠나고 만 것이다. 당시의 귀농 물결에는 농촌이 끌어당기는 힘보다는 도시가 밀어내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한 까닭이다.

 

최근 들어 도시민의 농촌 이주에 대해 다시금 논의가 활발해졌다. 농촌 활성화의 한 방편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도시민 유치를 농촌정책 차원에서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2005년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에서는 도시민 둘 중의 한 명은 장래에 농촌 이주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약 십 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농촌 이주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어떠한 내용을 담은 질문지를 내밀 수 있을지 묻게 된다. 귀농 적격 여부를 측정해보는 질문 항목들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될 것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농촌으로 거처를 옮기는 데 필요한 용기와 결단의 무게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인가?

 

이런 물음에 답하자면 농촌이 도시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매력요소가 과연 무엇인지 한층 구체적으로 탐구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나름의 매력요소가 있다고 가정 했을 때 그것이 현실 속에서 가치를 발휘하도록 하는 제도나 기법 등을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일례로 삭막한 산업도시의 폐단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찍이 영국에서 고안되어 도시공원의 전범으로 발전한 ‘풍경정원’이나 하워드(E. Howard)의 ‘전원도시운동’의 경우를 보자. 이들 사례는 자연 및 농촌의 매력요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실제 공간계획 원리로 정교화 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논의되는 어메니티(amenity) 개념 역시 때묻지 않은 전원공간의 이상을 도시계획 수법 속에 끌어들이고자 시도하면서 가다듬어진 바 있다.

 

영국은 도시보다 농촌의 인구 증가가 우세한 역도시화 현상이 특히 두드러지는 국가이다. 그 배경으로서 농촌이 갖는 강점에 대해 사회 보편의 공감대가 형성되도록 만든 전원도시운동 등과 같은 노력들이 결실을 맺은 점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영국의 경험이 꼭 모범답안일 수는 없지만, 정주 터전으로서 농촌의 가치에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농촌의 매력요소를 현실 속에 구현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보인 다방면에서 성과를 의미한다.

 

정책당국에서 희망하듯 농촌의 활력 증대에 보탬이 될 정도로 도시민의 농촌 이주가 뚜렷한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으려면, 오로지 개개인의 고뇌와 결단, 노력에 의해서만 귀농의 성패가 좌우되도록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도시가 밀어내는 힘보다 농촌이 끌어당기는 힘이 도시민들을 움직일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정책적으로 펼쳐야 하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도시민 유치를 위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그러나 좀 더 긴 시야에서 농촌의 강점을 잘 찾아서 그것을 지역개발 원리로 살려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잠재적인 농촌 이주 희망자들이 갖는 막연한 희망을 잘 포착하여 귀농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 담당자나 농촌 지자체에서 한결 구체적인 약속을  제시하는 일이 이제부터 할 일이다.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