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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농업에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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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임송수

뉴질랜드 농업에 없는 것

임송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뉴질랜드엔 뱀이 없다. 가축을 해칠 만한 맹수도 없다. 마오리(Maori)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13세기 전까지 포유동물은 박쥐가 전부였다. 그래서 오늘날 양이 사람보다 10배나 많지만, 거짓말이 나쁘다고 가르치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는 뉴질랜드에 맞지 않는 얘기다. 그 동안 타조의 친척인 날지 못하는 새 ‘모아(Moa)’가 멸종되었고, ‘키위(Kiwi)’ 새도 그 수가 크게 줄었다. 산림이 초지로 개간되면서 고구마와 타로(taro) 토란을 재배하던 전통 농업 대신에 낙농제품과 육류를 생산하는 목축업이 뉴질랜드 농업의 근간이 되었다.

 

오클랜드(Auckland) 공항에 내리니, 훈련받은 개가 다가와 손가방에 코를 댄다. 수입이 금지된 동식물 제품을 찾는 거란다. 그만큼 검역이 철저하다. 농민들은 정부의 철저한 수입검역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2003년 12월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견되어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이 중단되었을 때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뉴질랜드와 호주산 쇠고기였다. 사시사철 목초 사육이 가능한 뉴질랜드에는 광우병이나 구제역이 없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는 사람보다 소가 2배 이상 많다. 2006년에 젖소의 사육두수는 530만이고 육우는 433만인 반면에 인구는 400만이다. 그만큼 가축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국토면적의 75%가 산과 구릉지로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초지가 농지면적의 74%(1,150만 ha)에 이른다는 점이 다르다. 포도, 키위, 사과 등 원예작물의 재배면적은 12만 ha이고, 보리, 밀, 옥수수 등 경종작물의 재배면적은 17만 ha이다.

 

농업이 GDP의 17%를 차지하고 고용의 12%를 제공한다. 생산한 농산물의 80% 이상을 수출하고, 상품 수출의 60%가 농산물인 뉴질랜드의 최대 기업이 낙농조합 폰테라(Fonterra)라는 사실은 놀랄 일이 아니다. 수출국이다 보니 국제가격, 환율, 수입국 시장변화, 경쟁 수출국 동향 등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대규모 협동조합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이들은 낙농제품의 99%, 육류의 50%, 키위의 3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의 금융위기를 극복하려고 단행한 개혁 조치는 농업보조의 철폐로 이어졌다. 가격보조, 비료보조, 이자보조, 잡초제거 보조, 조세감면 등의 정부 지원이 모두 사라졌다. 그 전에 최대 농민단체인 ‘뉴질랜드 농민연합(Federated Farmers of New Zealand)’이 농업보조보다 치솟는 물가를 잡는데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제안서를 정부에 제출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농업보조 철폐로 당시 농가의 1%에 해당하는 800 농가(상업농)가 농업에서 떠나야 했다. 정부는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이 없는 농가의 퇴장을 도왔다. 농림부의 여러 기능도 독립시키거나 민간에 이양하였다. 약 6년의 전환기간을 거치면서 지가, 농산물 가격, 농업 수익성 등의 지표들은 안정되고 개선되었다. 그 결과 뉴질랜드는 선진국 가운데 농업보조가 가장 작은 나라가 되었다. 개혁 후 생산성과 경쟁력이 증가하여 농가 수입은 보조를 받던 때보다 오히려 향상되었다. 보조 때문에 사육두수를 늘리려고 바짝 마른 양들을 양산하는 농가의 관행도 사라졌다. 농민들은 보조받던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천혜의 자연 조건과, 정부와 농민들의 노력으로 광우병과 보조가 없는 곳; 오늘날 농업에 고용된 인구 비율이 30년 전과 다름없고, 1920년과 같은 수의 사람들이 농촌에 사는 곳; 하루에도 사계절의 날씨가 나타나는 변덕스러움 속에서도 철저한 시장주의 원칙(예: 사용자 부담 원칙에 따라 농가에 진입하는 공공 도로에 대해 농가가 사용료를 정부에 냄) 아래 국제 경쟁력을 일관되게 고민하는 곳이 뉴질랜드라고 느꼈다. 농장을 방문했을 때 아들의 이름이 함께 박힌 명함을 내미는 농민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그러나 토양침식으로 구릉지가 쓸려나가고 그 침전물로 인해 둔탁한 색깔로 변한 강물을 바라보며, 앞으로 환경문제가 뉴질랜드의 농업을 제약하는 걸림돌이 될 것이란 ?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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