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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 연구자의 “공자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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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호
KREI 논단  |  2013년 7월 15일 
김 정 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늘날 농업 문제는 대단히 복잡하다. 특히 이해관계자(stakeholder)가 다양하고 많아졌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공청회를 개최하면 대체로 주요 이슈의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요즘 정책토론회는 각자 자기 주장만 하고 끝나는 느낌이다. 우리 연구자들이 마무리 발언을 하면 “공자님 말씀이시네요”라고 핀잔을 듣기까지 한다.

  농정 연구자들이 공자님 같다는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필자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연구자들이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나름대로 소신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농정 연구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논리 구조를 세 가지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정책 목표에 대한 복안적 시각이 필요하다. 오늘날 농정의 이해관계자에는 서너 계층이 존재한다. 즉,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인과 이들 상품의 고객인 소비자 그리고 전후방으로 연관되는 산업체, 나아가 국가재정을 부담하는 납세자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정책 담당자인 정부 관료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정 연구자들은 농업인이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데 익숙했다. 필자도 90년대 초에 매년 마늘 생산비를 조사하여 정부수매가격을 제안했는데, 초안은 대체로 물가 상승률을 넘었다. 때로는 가격 인하를 주장하기라도 하면 “크레이(KREI) 박사 맞으세요?”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제 우리 농정도 국제규범에 맞춰가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연구자들도 거시적인 국민식량 안보와 미시적인 농가소득 증대라는 복안적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종합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둘째, 정책의 대상과 수단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앞서 농산물 가격지지 예를 들었지만, 이는 대상이 불특정 다수인 보편주의 정책으로 대표적인 후진 사례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맞춤형 농정’인데, 정책 대상인 농가를 유형별로 나누어 차별화된 정책을 선택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1970년대에 독일에서 시작하여 현재는 유럽공동농업정책(CAP)의 근간이 되고 있다. 대규모 전업농에게는 산업정책적 투자금융을 지원하고 영세 고령농에게는 사회정책적인 소득보전 직접지불을 제공하는데,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농업인들이 스스로 필요한 정책프로그램을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필자의 오랜 연구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지만, 하나의 정책 수단으로 여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은 공급자 중심의 욕심이다. 재원을 아낀다고 정책을 혼합하게 되면 언뜻 절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책 효과는 중도반단(中途半斷)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산업정책과 소득정책이 유사하지만, 정책의 대상과 수단을 달리하면서 효과가 극대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정책의 유효성과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농업·농촌 문제 가운데 우리 농업경제학자들이 풀 수 있는 영역은 제한적이다. 경제학은 시장경제를 분석하는 도구이기는 하지만 경제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가정하에서 해법을 제시하게 된다. 농산물가격에 대해서도 ‘시장경제 원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야만 가격지지 정책에 대한 과잉 기대를 줄일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경제학은 사람들이 재화나 용역을 선택하는 의사결정메카니즘에 대해 가격 논리의 합리성으로 해명하려는 학문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주식인 쌀은 생활필수품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별반 없는 상품이며, 쌀 시장은 경제이론이 그다지 작동하지 못하는 분야이다. 그런데도 농정 연구자들은 쌀의 상품적 특성을 일반화하여 경제이론에 접목시키려고 애를 쓴다. 농업경제 연구자들도 내심 경제학자로 대접 받고 싶은 것이다. 

  최근에 학제 간 융합(convergence)이 강조되면서 대학의 농업경제학과 명칭도 바뀌고 교과과정도 축소되는 경향이다. 이런 대학을 졸업한 젊은 연구자들이 통계 분석으로 사회 현상을 진단할 수는 있지만, 문제의 해법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다. 농정 연구자라면 농업·농촌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의식과 자세가 중요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공자님 말씀을 고집하는 ‘프로연구자’가 많아져 농정의 나침반 역할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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