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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자급률 제고, 결코 쉬운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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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농민신문 칼럼 | 2012년 8월 20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국제곡물 가격이 연일 오르고 있는 가운데 식량 자급률 제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료곡물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6.7%다. 1인당 국민총생산(GDP)이 251달러에 불과하던 1970년의 곡물자급률이 80.5%였는데 그동안의 경제규모 확대와 농업생산 기반정비, 기술진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식량자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식량자급률 하락은 시장개방 확대의 불가피한 결과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입 농산물 소비가 증가하고 식생활의 서구화 영향으로 밀과 사료곡물 수입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난 반면 국내 생산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1970년 쌀과 밀가루 소비량은 각각 135.4㎏, 26.1㎏이었으나 2010년에는 72.8㎏, 31.1㎏으로 바뀌었다. 이 기간의 식량작물 재배면적은 269만 9,000㏊에서 108만 3,000㏊로 대폭 줄었다. 그렇다면 쌀은 어떻게 자급을 유지하고 있으며 국제 곡물파동에도 불구하고 국내 쌀시장은 안정적일 수 있을까?

 

  쌀은 국내 가격이 외국에 비해 2~5배 높기 때문에 대외 가격경쟁력이 낮기는 다른 곡물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쌀 자급을 위해 정부는 경지정리와 저수지 설치 등 생산기반을 정비하고 기계화를 추진하는 한편 고단수·고품질의 신품종을 개발해 보급했다. 쌀 수매제도를 통해 정부가 높은 값으로 벼 수매를 했으며 쌀 가공과 유통을 효율화하기 위한 도정공장 현대화사업도 추진했다. 2005년부터는 직접지불제를 통해 불리한 농가소득을 보전해 주고 있으며 최근에는 소비촉진을 위해 쌀가공산업까지 지원하고 있다. 주식인 쌀 산업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고 이러한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현재의 자급자족이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외 수입 의존도가 높고 국내산 식용 수요가 늘어나는 밀과 콩 그리고 옥수수와 보리 같은 사료용 곡물의 국내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 밀과 보리의 경우 기술적으로는 논에서 벼 후작으로 재배할 수 있지만 수지타산을 따지면 이를 재배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전국적으로 전개한 우리밀살리기운동에도 불구하고 밀의 자급률은 여전히 2%를 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판로를 찾지 못해 올해 과잉재고량은 군납용과 주정용으로 공급할 계획이다. 20여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수요를 창출하지 못하고 수지맞는 농사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추진했던 쌀 정책의 경험과 식량안보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중장기적인 수급과 자급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종자 갱신 등 기술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 논의 배수개선과 밭 경지정리를 포함한 생산기반 정비 및 기계화 촉진, 동계작물 재배 확대, 새로운 상품개발과 수요창출, 직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보전 등 전면적인 식량정책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안정적인 투자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다 좀 비싸더라도 이 땅에서 생산된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로컬푸드 소비에 대한 국민들의 자각과 동참 그리고 영양균형을 고려한 식생활 유도와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같은 건전한 식품 소비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 식량자급률 제고는 단순한 선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비상한 결단과 생산자의 부단한 노력, 그리고 소비자의 이해와 참여에 의해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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