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놈의 찔레꽃 향 진동하는 유월은 또 오고 있습니다. 양손으로 후두둑 훑어내고 싶은 저 향, 해마다 맡을 때마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해대는 이유가 도대체 뭔지.
슬픔이고 아픔이고 그리움인 찔레꽃에는 언제나 내 유년시절이 숨어있습니다.
마당에 널린 소두엄 냄새에 머리가 아파질 것 같다 까탈을 부리면 엄마는 탁주 담은 노란 양은 주전자 뚜껑에 고추장에 조청 넣고 조린 마른 가자미 소복이 올리고 깊은 우물에서 꺼낸 시원한 돋나물나박김치 한통을 양손에 들리고 논일하시는 아버지께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심부름은 나만 시키는 것 같아 싫지만 싫다소리 한 번 못하고 논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엄마 광목 앞치마처럼 허연 찔레꽃 천지였습니다. 주전자 내려두고 꽃송이 하나 톡 끊어 탁주 주전자에 넣고 또 한 송이는 주전자 주둥이에 꽂아 큰언니한테 배운 동백아가씨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찰랑찰랑 넘치는 탁주도 아랑곳이 없었습니다.
“아~를 보낼라머 아한테 단도리를 좀 해서 보내덩가 간에 기별도 안가두로 이기 뭐꼬! 바래이 니 다음부터는 엄젆하게 좀 걸어다녀래이!”
어느 날부터 주전자가 커졌습니다. 촐랑거리며 걷는 가시나 단도리보다 주전자 키우는 일이 내 엄마한테는 더 쉬운 일이었겠지요. 말을 많이 하지 않으시는 엄마는 소두엄 냄새에 머리 아파하는 내게 찔레꽃향 맡는 심부름이 더 적당하다 판단하셨을 겁니다.
아버지 일 끝나기를 기다리며 논둑으로 산으로 다니면 거기가 놀이터였고 아버지께서 소고삐를 핸들삼아 “이랴~ 쯧쯧 어이 이랴!” 소 다루시는 소리와 쑥떡새 우는소리가 내 동무였습니다. 해질 무렵 무거워보이는 소풀지게를 진 아버지 뒤를 따르면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에 괜히 눈물이 났습니다.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보다 이렇게 노는 것이 내게는 더 좋았던 희한한 나는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냄새에 민감한 까다로운 딸이었습니다. 김장철이면 온 동네 진동하는 멸치젓 끓이는 냄새가 싫어 학교에서 오는 길 동구 밖에서 해질 때까지 해찰했습니다. 노랗게 물든 삭힌 콩잎 멸치젓갈 쌈을 좋아하는 엄마와 큰언니는 내 눈치가 보인다고 젓갈은 상에 올리지도 못하고 상아래 두고 드셨습니다. 참 고약한 딸이고 동생이었습니다. 어쩌자고 나는 그렇게 고약을 떨어서 진달래꽃 찔레꽃이 피면 이리도 가슴이 아프고 마는지요.
도시에 살았으면 잊은 척 살 수도 있었을 이놈의 찔레꽃 피는 계절.
아파트에 살았으면 창문을 열어도 요놈의 찔레꽃 향 맡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섬에 살면서 나는 자꾸만 내 상처를 키웁니다.
무논 소 쟁기질에 소풀지게 지는 아부지처럼, 탁주 주전자 챙기는 엄마처럼 농사 지으며는살지 않으리 했는데 모내기 하는 시부모님 점심준비를 하며 나는 또 아부지 엄마 생각에 마음이 싸해집니다.
201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