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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통개혁, 타산지석인가 먼 산의 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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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23년 1월 9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일본의 도매시장 유통개혁 현장에 다녀왔다. 5년 전 유통개혁 대책이 막 발표돼 일본에 다녀온 뒤 코로나19로 한동안 방문하지 못하다 이제야 다녀왔다.


일본은 도매시장 경매제도를 1999년과 2004년에 개선했다. 특히 2018년 큰 폭의 개혁을 단행한 뒤 2020년에 개정 도매시장법을 공포했다. 표면적인 개혁 의도는 아베정부의 규제 완화 일환이었다. 하지만 실제 시장과 정부 여건을 보면 그 속내는 정부에서 더이상 손을 쓸 수 없어 지역과 시장에서 ‘각자도생’ 하라는 것이었다. 시장 개설과 유통 주체들에 대한 허가 및 규제는 개설자인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고, 거래 제도는 개설자와 유통 주체들이 알아서 정하라는 내용이었다.


유통개혁 이후 5년이 지났다. 두드러진 변화는 도매시장과 도매법인에서 발견된다. 유통개혁은 도매시장을 살리고 활성화한다는 명시적 의도가 없었다. 이에 개혁 이후 도매시장의 폐쇄, 도매법인의 도산이 이어졌다. 도매법인은 생존을 위해 인수·합병했고 대부분 도매시장에서 도매법인이 하나로 통일됐다. 중도매회사도 합쳐지며 대형화됐다. 중도매회사는 중앙 도매시장에 20여개, 지방 도매시장에 10개가 안될 정도로 줄었다.


이밖에 일본의 농산물 유통구조 변화 몇가지가 보였다. 먼저 가공·외식 등 업무용 식자재 수요가 증가하고 수입이 늘었다. 이에 따라 농산물의 시장 유통이 감소하고 도매시장 경유 비중이 줄었다. 도매시장 유통은 대도시, 대형 도매시장 중심으로 집중되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대신 대형 도매시장을 중심으로 다른 중앙 도매시장과 지방 도매시장의 연계가 강화됐다. 도매시장의 가공 소포장, 구색 맞춤 등 물류센터 기능은 확대됐다.


농산물 출하지역은 대산지로 집중됐다. 채소는 홋카이도·이바라키현·지바현, 과일은 아오모리현·오카야마현·나가노현 등으로 몰리고 있다. 이들 지역 농협에서는 대도시 도매시장에 출하를 집중한다. 이에 따라 판매력과 가격 영향력이 강화되고 산지와 도매시장의 이인삼각 공생관계가 끈끈해지고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물류의 중요성이 커져 물류시설이 확충되고 시설현대화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 도매시장인 도쿄 오다시장의 물류시설 확충과 토요스시장·후쿠오카시장의 이전과 시설현대화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농산물 유통구조와 도매시장은 어떠한가.


일본은 유통 주체들이 물류시설을 짓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막혀 있다. 제도적으로 막힌 것은 해결해야 한다. 가락시장 시설현대화는 물류 중심의 현대화로 추진하고 각 도매시장에서 정부나 민간 모두 물류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산지에 있다. 일본은 농협 등 출하조직이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중심의 ‘공동선별·공동출하·공동계산’을 진행한다. 도매시장에서 대량 경매와 정가·수의 매매가 진행돼 가격이 비교적 안정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농협 출하도 형식만 계통출하한다. 경매는 개별농가 단위로 이뤄져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다. 그렇다보니 소량 경매가 이뤄지고 경매 가격은 들쑥날쑥하다. APC는 공동판매의 시발점인데 우리의 산지 APC는 단순 서비스시설에 불과한 실정이다. 반면 유럽과 일본의 APC는 대형화됐고 출하 중심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이러한 출하체계와 거래구조의 종합적인 개선이 중요한데 일부는 경매방식이 문제라 지적하고 경매하는 도매법인만 탓한다. 시야를 넓히고 열린 마음으로 근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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