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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농업협동조합과 산지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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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22년 10월 17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에 유럽의 농산물 유통 현장을 다녀왔다. 온라인 전자경매 등이 이뤄지는 협동조합의 산지경매장과 도매시장의 온라인 거래소를 방문했다.


프랑스 서쪽의 브르타뉴 지방에서는 원예농가들이 협동조합을 결성, ‘농업기본법’에 의거해 협동조합을 통한 ‘판매창구 일원화’를 했다. 산지경매장을 개설해 협동조합 중심 농산물 유통을 주도하고 가격 결정의 중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브르타뉴 지방의 세개 원예협동조합 연합인 세라펠(Cerafel)은 산지경매장 두곳에서 연간 6000억원 규모로 경매를 한다.


1960년 이전까지 개별 농가와 상대거래하며 횡포를 부리던 수집상들은 이제 산지경매장에 구매자로 등록해야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조합에 가입한 원예농가들은 상품성 있는 농산물 전량을 협동조합에 출하해 협동조합 브랜드로 판매하고 공동계산방식으로 정산받는다.


벨기에의 대표적인 원예협동조합 벨로타(BelOrta)는 첨단시설을 갖춘 대형 산지유통센터(APC)를 운영한다. 산지경매장에서 농산물이 연간 6000억∼7000억원어치 판매되는데 벨기에 농산물 시장점유율이 절대적으로 높다. 아스파라거스와 가지는 90% 이상, 오이·베리류·셀러리는 70% 이상을 차지한다. 90% 이상을 경매로, 나머지를 계약 방식으로 판매한다.


90% 이상 협동조합에 가입한 유럽 농민들은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 농산물 생산에 전념하고, 농산물 판매는 철저히 협동조합에서 담당한다. 협동조합은 산지포장센터에서 공동선별·상품화한 뒤 협동조합 이름과 브랜드로 산지경매장을 통해 등록된 상인들에게 판매하고, 상인들은 이를 도·소매 시장에 판매하고 수출한다.


협동조합의 산지포장센터는 대형화 추세다. 브르타뉴 협동조합연합에서 최근 개장한 포장센터는 대지 18㏊에 건물이 7㏊에 달한다. 벨로타의 산지유통센터는 65㏊나 되는 대지에 첨단 선별시스템과 저장고·물류시설을 갖추고 있다.


산지경매장에서 이뤄지는 경매가격은 상인들이 결정하지만 협동조합은 판매창구 일원화로 독점적 판매자가 됨으로써 가격 형성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유럽 도매시장에서 소매점이나 요식업체 구매자에게 경매를 하지 않고 흥정을 통해 상대거래를 하는 이유는 바로 산지에서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도매시장은 온전히 상인간의 거래 공간에 불과하다.


유럽의 농산물 판매 협동조합은 기업이나 다름없다. 조합원인 농민들에게 철저히 상품성 있는 농산물 생산과 출하를 요구하고 품질 등급에 따라 공동정산한다. 산지경매장에서 현물을 보지 않고 이뤄지는 온라인 전자경매의 경우 생산자와 구매자는 이름이 아닌 고유번호로만 표시돼 평등성이 보장되고, 가격은 투명하게 공개되며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다. 생산농가와 협동조합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고 전문화해 있다.


유럽에서 배울 점이 아직 많다. 거래교섭력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개별 농가들은 협동조합을 통한 판매창구 일원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협동조합은 농산물을 단순 계통출하하는 수준을 넘어 기업적 경영으로 수준 높은 상품화시설과 판매장을 설치·운영하고, 상인들을 산지경매장 등 판매창구로 끌어들여 농산물 가격 형성의 중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 후진적인 방식의 현물 대면 판매가 아니라 표준화한 농산물 정보만으로 판매가 이뤄지는 이미지 경매와 같은 온라인거래 등 수준 높은 판매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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