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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년이 반갑지 않은 농심(農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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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홍상

농민신문 기고 | 2021년 9월 1일
김 홍 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가을철에 수확해 이듬해 여름까지 소비하는 농산물이 많다. 예를 들어 쌀은 10월에 주로 거둬들여 이듬해 9월까지, 사과는 10월에 수확해 이듬해 7월까지 소비한다. 이처럼 두해에 걸쳐 소비되는 농산물의 특성 때문에 ‘유통연도’라는 개념이 생겼다. 양파의 유통연도는 6월부터 이듬해 3월, 건고추는 8월부터 이듬해 7월이다. 지난해 장마가 50일 넘게 지속됐고, 장마 이후에는 한달 동안 무려 4개의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농산물의 생산량은 줄고 가격은 올랐다.


농산물 가격은 날씨나 병해충·가축질병 등에 의해 등락한다. 생산량이 두배로 늘거나 반으로 줄어드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가격이 두배 오르거나 반토막 나는 일은 가끔 발생한다. 생산량 변화에 비해 가격 변동이 큰 것은 농산물 가격의 주요 특징이다. 재배면적이 증가하거나 날씨가 좋아 작황이 양호할 때는 대부분 농산물의 생산량이 증가한다. 이때 가격은 생산량이 증가한 것보다 크게 떨어져 대부분의 농가소득이 감소한다. 반면 생산량이 감소할 때는 농가마다 소득이 감소하는 정도가 다르다. 소득이 오르는 농가도 있지만 소득이 크게 떨어지는 농가도 있다. 예를 들어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의 농가는 피해가 커 가격이 상승해도 수확한 농산물이 없어 소득이 크게 감소한다.


통계청은 7월 달걀 소비자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겨울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전국을 휩쓸어 적지 않은 가금류를 살처분한 결과다. 달걀값이 올랐으니 모든 양계농가들의 소득이 증가했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AI로 닭을 살처분했지만 아직까지 병아리를 입식하지 못한 농가도 있고, 입식했어도 병아리가 자라 달걀을 낳을 수 있는 기간인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소득이 없는 농가도 있다. 방역을 소홀히 해 살처분한 것이니 소득 감소가 농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축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발생 사실이 확인되면 발생 장소 기준 반경 3㎞(2월부터 1㎞) 이내 양계장의 닭도 예방적으로 살처분해야 한다. 이로 인해 병 발생이 확인된 농가보다 더 많은 농가들이 닭을 살처분했다. 가축질병으로 가축들이 살처분될 때의 농산물 가격 상승도 우려스럽겠지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농가의 아픔도 헤아려야 한다.


대부분의 매장에서 AI 발생 이전과 비교해 달걀값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전남 나주시로컬푸드직매장은 달걀값이 종전과 같았다. 로컬푸드에 납품하는 양계농가는 AI로 인한 피해가 없어 생산량이 줄지 않았고, 이에 가격을 올릴 이유도 없었다. 소비자와 농민은 오랜 기간 서로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농가는 다른 곳에 달걀을 팔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어도 직매장에 이전과 같은 물량을 동일한 가격에 납품했다. 소비자도 전과 같은 양의 달걀이 직매장에 들어와 같은 가격에 팔릴 것이라고 믿어 굳이 사재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최근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서민들의 가계를 어렵게 하는 주범이라고들 한다. 나아가 높은 농산물 가격 때문에 추석 물가가 걱정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적지 않은 농산물의 가격이 이미 고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다. 아직 여름이 끝난 것도 아니고, 태풍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지만 조심스레 평년작 수준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농산물 생산량은 증가하고, 소비자는 농산물 가격이 하락해 가계의 시름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풍년을 예감하는 농심(農心)은 떨어지기 시작하는 농산물 가격을 바라보며 한가위가 풍요로울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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