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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종주국의 역사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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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이동필
프레시안 기고 | 2006년 08월 07일
이 동 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려인삼의 위기'를 지적하는 말들이 많이 들려온다. 나라 밖에서는 인삼종주국의 위상을 중국이 빼앗아가려 하는 마당에 나라 안에서는 '가짜 산삼'이나 조직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위기라고 함 직도 하다.
우리가 '
한국 고유 브랜드'라는 말만 앞세우고 세계시장에서 정작 내실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인삼은 사실 우리의 자존심과 관련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고려인삼 위기의 실상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론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선임연구위원의 글을 통해 몇 차례 검토해본다. 이동필 박사는 그 동안 인삼뿐만 아니라 민속제품의 개발 및 보급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편집자>


지난 7월31일 홍콩 문회보에 "백두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인삼을 '장백산 인삼'이란 상표로 통일하고
인삼재배규격화와 표준화, 가공제품의 연구개발 등으로 브랜드가치를 높여 인삼을 길림성의 특산품으로 만들겠다"는 중국 길림성의 야심 찬 계획이 보도되었다. 이를 소개한 국내 언론의 기사 제목도 "中, 인삼은 중국의 고유브랜드"(연합뉴스), "중국, 인삼·백두산은 우리 것"(SBS), "중국, 인삼 동북공정?"(중앙일보), "中, 백두산 이어 인삼도 빼앗자?"(한국경제) 등등 절박하기 짝이 없다.

중국의 한
지방정부가 자기 고장의 인삼을 연구 개발하고 표준화해서 특산품으로 만들겠다는 데에 왜 우리 언론들이 이토록 관심을 갖는 것일까? 심지어 동북공정과 백두산 문제까지 끌어와서 민족적 감성에 호소하며 뭔가 '큰 일 났다'는 투다.

한국은 인삼의 종주국인가?

▲ 중국 길림성의 장뇌삼 단지, 중국은 최근 장뇌삼의 품질기준을 마련하고 차별적 유통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했다. ⓒ장철수 등, 해외연수보고서, 2006


복잡한 설명 할 것도 없다. 우리 언론의 보도 저변에 깔린 정서는 이런 것일 게다. '인삼은 한국 고유의 특산품인데 어떻게 감히 중국이 자기네 것인 양 할 수 있느냐' 혹은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한국의
역사를 종속화하려 하더니 이제 인삼까지 먹어가려는데 그냥 두고 볼 수 있겠느냐'는 것 정도가 되겠다.

과연 그런가? 정말 인삼은 한국 고유의 브랜드이며 한국은 인삼의 종주국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역사적 사실이며, 무엇이 현실적인 위기란 말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인삼에 대한 고정관념과 상식 중에 역사와 현실을 꿰뚫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사실'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이 모든 논의에 앞서 우리는 '인삼은 한국의 특산품'이라는 구두선 외에는 인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의 현실적 적용 문제에 대해 우리는 매양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와 문화가 그 실체적 뿌리를 확인하지 못한 채 신화화될 때 과연 얼마나 큰 힘을 가질 것이며 현실세계에서 어떻게 자긍심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인삼. 따져볼 요소가 참 많은 물건이다. 과연 우리는 인삼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또 그런 이해의 바탕 위에서 '우리의 특산품'으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중국 지방정부의 마케팅 방식에 대해 흥분하는 것보다 우선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다.

'고려인삼의 농약 과다' 주장엔 정면 대응해야

다만, 중국측 행태에 흥분하는 한국인들이 많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중국측의 주장들이 갖는 문제점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그동안
국제시장에서 싸구려 저급인삼의 대명사로 통용되던 중국삼을 규격화?표준화하고 연구개발해서 고급 청정인삼으로 차별화하겠다는 구상은 놀랍지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런 구상 가운데 (1) '길림성 3개 현에서 생산되는 장백인삼은 고려인삼보다 농약함량이 60~7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주장, (2) '장백산 인삼이 한약재로 사용된 기록이 17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므로 인삼은 중국의 고유브랜드다'는 주장, 그리고 (3) '발해가 220년간 당나라와 94회의 조공무역을 하면서 인삼을 주요 공물로 보냈는데, 발해는 당나라의 변방정권이었으므로 장백산 인삼은 중국고유의 식품이다'는 주장 등은 문제가 있다.

이런 중국 측의 주장들이 단순히 인삼종주국을 자부해 온 우리 국민들의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 관계에서 상당한 오류 내지는 오해의 여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고려인삼이 장백산 인삼에 비해 농약함량이 60~70배나 된다'는 주장은 세계
소비자들에게 고려인삼의 품질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고발하는 것으로 그 명성이나 소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인삼에 농약을 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용할 수 있는 농약의 종류와 사용량을 고시해서 잔류농약??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인삼의 품질과 농약함량이 중국시장에서 문제가 되었다는 것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 시중에서 문제가 된 것은 BHC, 퀸토젠 등 맹독성 농약성분이 다량 함유된 중국산 인삼을 밀수하여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경우들이었다. 그렇다면 농약함량 운운하는 것은 중국측의 적반하장이고 도둑이 제발 저린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길림성 정부에 그와 같은 주장의 근거를 밝히도록 강력하게 요구하고,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 할 대목이다.

중국도 '종주국'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으로, '인삼이 중국의 고유브랜드'라는 주장은 꼭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중국 후한 때 장중경(210~232)이 쓴 <상한론(傷寒論)>이란 책에 인삼을 의약품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학계에서는 이것이 인삼을 약용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이 자칫 중국삼이나 장백삼의 품질이 좋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고려인삼, 중국삼 또는
동양삼으로 불리는 파낙스 진생(Panax Ginseng)은 한국을 중심으로 만주, 연해주 등 북위 22~48도 지역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어서 그 이전에도, 그리고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 중국 길림성의 인삼제품, 산삼과 장뇌삼 외에 우리나라의 홍삼과 유사한 포장을 한 제품들이 보인다. ⓒ장철수 등, 해외연수보고서, 2006


다만 만주와 우리나라는 토양은 물론 기온과 일조량, 무상(無霜)
기일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종의 인삼이라도 품질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홍경(483-496)은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 '고려삼은 요동 일대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백제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여 당시 백제와 신라 등 한반도에서 생산된 고려인삼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서 생산된 고려인삼은 단단하고 진한 향기가 난다든지, 사람의 모양을 닮았다는 자연적인 특성 이외에도 인삼경작 및 홍삼제조의 역사와 기술수준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451년 발간된 <명의별록>에 '백제 무령왕 12년에 양나라 무제에게 인삼을 선물했다'는 기록 이래 지난 1500년 동북아지역의 인삼교역사를 보면 중국이나 일본이 우리나라로부터 일방적으로 인삼을 수입만 했을 뿐 우리가 그들로부터 수입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도 과연 인삼이 누구의 브랜드인지는 자명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발해는 당나라의 변방국가였기 때문에 장백산 인삼은 중국의 고유식품'이라는 주장도 듣기
거북하다. 당시 발해가 과연 중국의 지방국가였는지는 여기서 차치하기로 하자. 당시 인삼은 산삼을 채굴한 것이기 때문에 교역량이란 적으면 20~30근, 많아도 100~200근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무역을 220년간 94회 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기 나라의 고유한 식품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공물과 진상·복정 등 여러 가지 조세 형태로 인삼을 수집하여 왕실의 의약품과 무역, 그리고 국가재정에 활용하였다. 또한 주세붕이 풍기군수로 재직(1541~46) 중에 인삼재배법을 보급하여 민간에서도 폭넓게 사용하였다는 기록을 통해 일찍부터 생활문화 가운데 인삼이 보편화 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왕실이나 교역에 필요한 인삼을 충당하기 위해 부과한 과중한 세금을 피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슬픈 역사 속에서 국민들은 신앙처럼 인삼의 효능을 믿었고 오늘날 이를 바탕으로 세계 최고의 소비자가 된 것이니 어찌 인삼을 중국만의 고유한 식품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무관심과 무성의가 초래한 위기

사실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장백산 인삼' 발전구상은 지난 4월 26일 길림성이 발표한 <길림성 인삼
산업 가속화발전추진 시행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는 '장백산 인삼' 브랜드 구상 외에도 향후 3년 내 지역인삼의 80% 이상을 무공해로 생산한다든지, 생산액이 1억 위안을 넘는 선진기업을 10개 이상 되도록 하고, 20~25개의 지적소유권을 갖춘 하이테크제품을 시장에 내놓도록 하겠다는 등의 대단히 다양하고 종합적인 계획들이 포함되고 있다. 정작 우리 정부나 인삼계가 이런 사실에 대해 무덤덤하다는 데에 오히려 위기의 핵심이 있다.

또 미국의 '2005년 농업법(Farm Bill)'과 농무성 공식문건(Plant Profile)에서는 인삼을 미국삼(
American Ginseng)과 중국삼(Chinese Ginseng)의 두 종류로만 분류해 고려인삼이란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인삼종주국이라고 주장하는 우리는 과연 이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더구나 친환경생산을 하고 장뇌삼을 산업화하는 세계 인삼시장의 흐름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인삼 분야의 동북공정'과 세계시장에서의 '고려인삼의 위기'는 어쩌면 지난 명성에만 안주하려는 우리 스스로가 초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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