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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사태 이후, 그래도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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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강창용

영농자재신문 기고 | 2021년 1월 11일
강 창 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시니어이코노미스트)



“속도를 늦추라.

너무 빨리 춤추지 말라.

시간은 짧고,

음악은 머지않아 끝날 테니.”

데이비드 L 웨더포드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이다.


범지구적인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갑자기 모든 것의 이동이 느려지고, 적어지고, 규제의 대상들이 늘어났다. 세계 모든 사람과 물자들의 이동이 어렵게 되었다. 일부 도시와 국가의 록 다운도 경험했다. 초고속으로 흐르는 시대에 살던 모든 것들이 짐짓 멈춘 듯 다가오고 있다. 우울증에 의혹증, 불신과 불만이 누증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매우 엄중하고 지난한 시절이다. 이 사태가 언제쯤 가게 되면 진정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또 다른 지구적인 재난이 오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도 없다. 암울하게 2021년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고 있다.


초고속 스마트 시대에 왠 뚱딴지 같은 ‘느림’을 이야기할까 의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어서 빨리 이 재난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데에 부정적 의견을 낼 의도는 없다. 다만 데이비드의 시를 되뇌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의 여유가 주어졌다”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울렁거림을 조금이라도 진정해 본다고 손해 볼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생계에 대한 압박이 적지 않아서 섣불리 말하기조차 어렵지만, 어차피 지금 상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면, 잠시만이라도 그리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새해 벽두에 잠시 옛날을 회고해 보고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 한번쯤 생각한다는 것, 그리 나쁜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던 시대에서 지금은 말하면 컴퓨터에 저장되는 시대이다. 도서관에 앉아서 따뜻하게 볕을 쬐면서 책을 보던 낭만은 사라졌다. 밤새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지금은 1시간이 조금 넘는 기차여행도 지루하다고 느낀다. 어련하겠지만 서너 살부터 외국어를 가르친다고 난리법석이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편의점에서 김밥으로 때우거나, 패스트푸드를 드라이브인으로 받아 차 속에서 먹는다. 더 빨리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이다. 그렇게 보내다 보면 어느덧 은퇴할 시기가 된다. 단거리 달리기 시합하듯 우리는 살고 있다.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앞만 보고 뒤처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일을 해왔다. 지금 은퇴하고 나서야 나를, 가족을, 주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개인적인 허물이야 차치하고, 허전함과 서늘함을 느끼곤 할 것이다. 관성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갈등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사는 이유가 시시각각 변한다지만 변한 그것조차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시 한 권을 사서 보는데 “여보게 좀 천천히 가세”라고 그 누군가 말을 전해 오는 듯하다. 지금의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힘든 지금도 너의 유한한 인생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면서 살라고. 우리 모두에게.


해를 넘기고도 코로나 19로 인해 겪고 있는 세계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극복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들이 경주되어 오고 있다. 쉽게 예방도 치유도 되지 않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왜 이러한 사태가 초래되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이 사태에 당면한 우리들의 이해와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어차피 단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원하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장거리 경주이다. 진득하게 생각하고 대책을 마련하면서 사회공동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뭉쳐서 갈 때. 그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절망한다고, 잘못 대응한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바른 대응이 되지 않는다.


농업경제와 정책을 염려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지적하고, 동시에 깊게 자각해 볼 점이 있다. 적어도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를 둘러싼 세계 각 국가들의 대응을 보라. 시장경제가 통하던가? 가격기능이 작동하던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던가? 국가와 국민의 삶과 죽음이 걸린 문제 앞에서 시장경제는 허울뿐이다. 국가적인 재앙 앞에서 인도주의는 쓰레기가 된다. 만약 지금의 사태에 농산물, 즉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이 보태진다면 세계는 어찌 될 것인가.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조용히 생각은 해 볼 일임은 분명하다. 특히 어느 정도의 반세계화, 내지는 탈세계화를 주장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곱씹어볼 주제이다.


희망을 노래한 리젤 뮬러의 싯귀를 신년 인사로 공유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파괴할 수 없는 고유한 선물이다.

죽음을 반박하는 논리이며, 미래를 발명하는 천재성이고, 우리를 신에게 가까이 데려가는 모든 것이다.”

2021, 신축년, 여전히 어려움이 많지만, 새로운 한해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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