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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자급의 가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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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종인

농민신문 기고 | 2020년 4월 15일 
김 종 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전세계가 식료품 사재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각국의 소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필요 이상으로 과민 반응한 결과다. 우리나라만 사재기 광풍 속 무풍지대로 남아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위기 때마다 재현되는 식료품 사재기는 줄곧 비난의 대상이었다. 자기만 위기를 피하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이 정작 절실하게 식료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도덕적인 지탄을 받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재기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식료품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에선 휴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 휴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고 한다.


휴지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료와 마스크의 원료가 같아 ‘화장지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일본 총리까지 나서 유언비어임을 강조했지만 쉽사리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재기는 정말로 과장되고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것일까?


식량을 대상으로 살펴보면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3월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옥수수·밀·쌀·콩 같은 주요 곡물의 재고가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간 물류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점은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가축사료용 대두박의 수출량이 많은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지역에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차량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보고했다.


다시 말해 곡물 재고의 총량은 전세계적으로 충분하지만 감염병으로 인해 물류시스템에 이상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를 최소한으로 컨트롤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더해 곡물 수출국이 앞으로 사태가 악화할 것에 대비해 자국의 식량 확보를 담보하는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곡물 수출을 금지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곡물 수입국 중심으로 심각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전세계적으로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지만, 감염병 확산으로 나라간 교역에 차질이 발생한다면 수입국들이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부인하긴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대규모의 식량을 수입하는 필리핀·인도네시아 등에선 주식인 쌀을 사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1인당 구매량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필리핀의 식량 상황을 좀더 살펴보면 우려의 실체가 명확해진다. 필리핀은 우리가 먹는 쌀과는 약간 형태가 다른 장립종을 주식으로 하는데, 수입에 의존하는 비율이 적지 않다. 대략 국내에서 1800만t 내외를 생산하는데, 지난해 쌀 수입량은 270만t을 훌쩍 넘어 국내 생산량의 15%에 육박한다.


전체 쌀 수입량의 70% 이상을 베트남 한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식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필리핀 국민의 입장에선 최근 감염병 확산과 이로 인한 베트남 등의 쌀 수출제한 조치 등이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쌀을 자급하고 있어 쌀 교역의 변화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쌀이 남아서 쌀 생산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하는 형편이다. 남아돌아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우리 쌀, 위기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쌀 자급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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