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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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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9년 12월 6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중에 최장수 프로그램은 <전원일기>다. 농촌 지역사회의 1980년대와 1990년대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꾸준하게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의 주요 등장 인물 중 한 명으로 ‘김회장’이 나온다. 그가 ‘김이장’도 ‘김면장’도 아닌 ‘김회장’인 까닭은 무엇일까?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재벌 총수를 뜻하는 그런 회장은 아닐 터, 김회장은 무슨 회장이었을까? 아마도 지역사회의 이러저러한 조직 중 하나를 대표하는 자리를 맡은 경험이 반영된 호칭이리라.


예전에는 읍․면이나 리에서 활동하는 지역사회 조직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회장님’들도 많았다. 리마다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가 있었고 읍이나 면으로 나가면 상가 번영회, 동창회, ○○장학회, △△체육회 등의 조직이 ‘당연히’ 있었다. 거의 100년 전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도 중국으로 건너가기 직전까지 충남 예산에서 농촌 개혁운동에 헌신하면서 목계농민회, 부흥원, 수암체육회, 구매협동조합, 월진회, 위친계 등 각종 지역사회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다. 지금 농촌에는 지역사회 조직이 얼마나 남았고 얼마나 생겨나는가? 그 많던 회장님들은 안녕하신가?


농촌에서 지역사회 조직은 주민 개인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신뢰와 규범을 공유하게 만드는 생활양식의 중요한 측면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주민의 삶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인 사회 자본(social capital)의 대표적 형식이다. 아니 어쩌면, 거꾸로 말해야 하겠다. 주민들 사이에 신뢰와 규범이 공유된다면 그곳은 아직 ‘지역사회’라 부를 만한 곳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사회’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려야 할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에서 R. 퍼트남은 미국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나 홀로 볼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같은 경향이 1990년대에 정점에 도달해 미국 사회가 깨진 유리조각처럼 원자화된 개인들(atomized individuals)의 모습으로 파편화되었다고 경고한다. 퍼트남의 논지는 ‘그렇게 작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시 사회적 연계를 맺어야 지역사회가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홀로 볼링>의 부제(副題)가 ‘미국 지역사회의 붕괴와 회생’이라는 것에서 그런 관점이 잘 드러난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농촌에서 지역사회는 막연한 것이 아니다. 생활의 온갖 측면에서 구체적인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은 흔히 신뢰와 규범이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어떤 중년 남성이 몇 년 전 전남 순천시의 어느 시골 읍내를 지나다가 짬을 내어 미용실에 들렀다. 그러나 미용실 아주머니는 남자 머리는 깎지 않는다면서 손님을 거절했다. “길 건너편에 이발소가 있는데, 그 이발소 사장님과 나는 이 지역사회에서 수십 년 이미용업에 종사해왔습니다. 한 동네 살면서 내가 남자 머리를 깎기 시작하면 저 이발소는 영업을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니 건너편 이발로소 가십시오.” 농촌 지역사회는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 수요-공급 곡선의 원리가 온전히 작동하는, 혹은 가성비를 따지는 구매자의 셈법이 중요한 시장 메커니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요즘에야 드물겠지만, 농촌에서 여러 사람들이 돈을 내어 장학회를 만들고, 집안 형편은 어려워도 학업에 열심인 학생들을 돕는 일은 흔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요즘 말로 체육대회)는 사실상 면(面) 주민 체육대회나 다를 바 없었다. 학부모가 아니어도 주민들이 한데 모여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 친목을 나누는 자리였다. 심지어 불량끼가 있는 고등학생조차, 사람들 자주 다니는 길목을 피해 숨어서 담배를 피웠는데, 이른바 ‘지역사회의 보는 눈’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여름철 홍수에 마을 개천을 건너던 작은 다리가 끊어지면, 그것을 복구하려 시멘트 포대를 나르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일에 청년회가 앞장섰다. 기초생활보장제도나 푸드뱅크 따위의 복지 정책사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부녀회 등의 단체들이 읍면에 사는 주민 중 건강이 안 좋거나 생계가 어려운 이들에게 최소한의 먹거리를 제공하거나 가사노동을 도와주는 봉사활동에 나서는 일이 흔했다.


수십 년 계속된 인구 감소와 고령화와 더불어 자생적인 주민 조직이 탄생하는 것보다 소멸하는 것이 훨씬 더 많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농촌 지역사회는 심각한 사회적 지속가능성 위기에 직면했다. 그렇지만 비관만 할 일은 아니다. 최근 10여 년 사이에 불기 시작한 사회적 경제, 마을만들기, 주민자치 등의 운동은 지역사회 조직을 창조․갱신하면서 낡고 해진 농촌사회의 씨줄과 날줄을 교체하고 새롭게 직조(織造)하는 마중물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어느 농촌에서 주민들이 합심해 폐교 위기에 처한 작은 학교를 살려냈다는 소식,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확보하고 공급한다는 소식, 지역의 농민들이 단결해 로컬푸드 운동을 펼치고 지역농업을 새롭게 꾸미기 시작했다는 소식, 농업․복지․환경 등의 여러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연구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소식, 저수지 등 농업환경을 가꾸고 관리하려고 주민들이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지역의 주요 농정 현안을 동등한 입장에서 논의할 조직화를 시도한다는 소식 등 찾아보면 지역사회 조직 활동 사례가 적지 않다.


다만, 정부의 농업․농촌 정책이 사회자본이나 지역사회 조직의 중요성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깝다.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불충분하다. 농업인이나 농촌 주민 개인 또는 한 단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고 마는 보조금 정책 사업이 여전히 주류를 이룬다. 돈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농촌의 사회적 회복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즉 지역사회 안에서 조직화를 촉진하고 견인하게끔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을까? 혹시, 정책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전문가, 연구자, 관료 등이 농촌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보지 않아서 그걸 모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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