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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의 목표와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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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병률
농민신문 기고 | 2019년 11월 13일
김 병 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투게임에서 목표를 특정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공격하는 것을 논타깃팅 공격(Non-Targeting Attack)이라 한다. 반면 마케팅에는 시장 세분화(Segmentation), 목표시장 설정(Targeting), 위상 또는 이미지를 정립(Positioning)하는 STP전략이 있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집중해서 제대로 된 판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는 마케팅전략이다. 여기서 목표는 해당 주체가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지향하는 실재적 대상을 일컫는다.


농업·농촌 정책에도 STP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정부의 농업정책으로 크고 작은 농정이슈들이 불거진 가운데 정부나 국회,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등에서 내놓는 정책의 목적이나 목표·수단들을 대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자나 연구자가 건설적인 비판은 물론 정책대안을 제시하거나 논평하는 것조차 심사숙고하는 것 같다. 책임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부끄럽기까지 하다.


최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포기를 결정하면서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물론 국가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결단한 것에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선례와 다른 대응이 아쉽다. 정부는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타결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농업경쟁력 제고와 농민들의 피해보전을 위해 수많은 논의와 연구를 거쳐 42조원 규모의 농어촌구조개선사업과 15조원 규모의 농어촌특별세 신설 등 여러 피해보전대책을 수립했다. 농업은 개도국 지위포기에 따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만큼 결정과정과 대책이 너무 속전속결이고 대응예산이 미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부가 농업경쟁력 제고라는 목표를 위해 내놓은 정책수단들은 개도국 지위포기와 무관하게 그동안 논의해왔던 공익형 직불제다. 농업재해보험 품목, 초등학교 과일간식, 로컬푸드 확대 등도 마찬가지다. 이는 농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와 큰 관계가 없는 지엽적인 정책수단이다.


이 정책수단들이 개도국 지위포기로 인해 예상되는 관세인하 가속과 수입증대에 대항력을 가질 수 있는가? 보조금 축소에 따른 농업소득 손실에 대한 대응력이 있는가? 허용보조가 가능한 생태보전,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집중투자 지원예산이 충분히 추가됐는가? 예산이 제한적인 부분은 이해하지만 농업계에서 개도국 지위포기에 대응한 특별예산으로 받아들이기엔 부족하다. 농업경쟁력 제고를 추구한다면 과거 특별예산과 같은 추가 결정이 이어져야 한다.


정부와 농특위가 내놓은 ▲농민 행복 ▲사람 중심 농정 ▲지속가능 농정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다원적 기능 발현 등은 매우 중요하고 당연히 추구해야 할 농정목표지만 다분히 추상적이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치밀하고 구체적인 정책수단들이 다양하게 마련돼야 한다. 공익형 직불제, 푸드플랜, 로컬푸드, 사회적경제 등 몇가지 상징적인 정책수단만으로는 도달할 목적과 목표가 너무나 멀다. 그런 점에서 경쟁력 강화 농정과 지속가능 농정이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추진돼야만 궁극적인 농정의 미래상이 잡힐 수 있다.


농업·농촌의 근간을 이루는 농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수익창출이다. 농정의 목표설정은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농가는 농사를 통해 돈 버는 재미를 본다. 농업에서 경쟁력과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면 이를 포기하게 된다. 공익형 직불제의 역할도 있지만 이는 보조일 뿐이며, 정부가 농민의 생업을 대신할 만큼의 보조금을 줄 수도 없다. 농사의 수익성이 담보돼야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발전에도 참여할 수 있다. 로컬푸드 역시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농가는 주수입원이 아닌 보조적인 수입원으로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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