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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의미의 농업인과 상식적 의미의 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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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9년 7월 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언어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다. 언제나 무엇인가 흘러넘친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겨난다. 선택과 배제, 언어를 사용해 개념을 정의할 때마다 태어나는 쌍둥이다. 농사짓는 사람을 ‘농업인’이라고 법률이 호명할 때, 그 뜻이 ‘농민’이라는 말의 뜻과 일치할 수 없다. 농업에 관한 최상위 심급의 법률인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은 “‘농업’이라 함은 농작물생산업, 축산업, 임업 및 이들과 관련된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그리고 “‘농업인’이라 함은 농업에 종사하는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라고 규정한다. ‘농업인’이라는 용어가 그렇게 (법률적으로) 탄생했다. 이때 법의 무대에서 퇴장한 단어는 ‘농민’과 ‘가족농’이다. 법률에 규정된 ‘농업인’이라는 말에 함의되지 않은 것들 중에 한국 농업·농촌의 미래를 밝힐 논의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농업인 지위를 인정받으면 그에 따르는 특권과 혜택이 적지 않은데, 법률상의 농업인 정의가 아주 단순해서 법적 의미의 농업인 되기가 아주 쉬워서 문제라는 비판이 있다. 반면에, 처음으로 영농을 시작하려는 도시 출신 청년이나 농가의 여성 입장에서는 법률상 농업인 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청년 신규취농자나 농가 여성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현행 법제에서는 1000㎡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거나 임차해 영농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 ‘농업인 되기’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토지 가격이 비싸서 매입하기 어렵고,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을 통해 계약서를 작성하는 합법적 임차의 기회는 아주 적다. 자본이 부족해 임차농으로 농사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청년들이 법률이 인정하는 농업인 되기가 쉽지 않다. 농지 소유자 명의를 남성 가장의 몫으로 돌려놓는 가부장제 문화 때문에 농사짓는 여성이 사실상 가족 농업노동의 절반을 수행하면서도 법률적 의미의 농업인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농정을 수립하고 규율하는 법제와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 외에, 농민(또는 농업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정 문제도 있다. 가령, 최근에 농촌 지방자치단체 여러 곳에서 검토하거나 추진 중인 농민수당 제도를 둘러싼 논쟁에서 농민(또는 농업인)과 관련된 정체성 문제의 일단이 드러난다. 또 다른 예로, 사회가 농업농촌에 바라는 것이 먹거리 생산만은 아니게 되었다는 점도 농민(또는 농업인)의 정체성 문제와 큰 연관이 있다. 오늘날에는 먹거리 생산뿐만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농업, 즉 다기능 농업이 요청된다. 정부의 농정 또한 다기능 농업을 촉진하려는 방향으로 전환될 기미를 보인다.


법률상 농업인 규정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법률이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법률이 정한 ‘농업인’ 개념과 법제도 바깥에서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농민’이라는 개념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농민’ 개념이 확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농업인’은 철저하게 ‘직업 범주’로서 인식되지만, ‘농민’은 ‘직업 범주’가 아닌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현실에서는,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규정된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지만 누가 보더라도 ‘농민’이라 불러 마땅할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거꾸로 ‘농업인’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농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현행의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규정하는 ‘농업인’이라는 말은 사회가 원하는 ‘농민’의 이미지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현재 법률은 단순히 ‘농지 경작’ 또는 ‘가축 사육’만을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농사지으며 사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사회적 인정과 관련한 거시적인 사회 변화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 농업인 또는 농민이란 누구이며, 그 정체성을 법제에 타당하게 반영하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답하려면, 훨씬 더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농업인’이라는 말의 법률상 정의는 이미 현실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이 상황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아마도 ‘농민=농업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게 된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농민≠농업인’이라고 할 때, 그 차이점은 마을 또는 지역사회에서 여럿이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적 차원에서 유래하는 것 아닐까? 농민을 ‘직업 범주’로만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농민은 땅 그리고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농민이 농촌에서 농사짓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생활은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전체 사회에 환경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제공한다. 


법률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온전히 규정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오히려, 법률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제대로 규정하도록, 제도와 정치의 환경을 바꾸려는 사회적 인정 투쟁이 필요하다. 한편, 사회 안에서 ‘농민’은 이미 정의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누가 정의하는가? 농민 자신들이다. 농민 스스로 ‘새로운 농민’을 정의하면서, 농민들 스스로 ‘새로운 농민층’을 구성해야 한다. 오늘날 그 새로움의 열쇳말은 무엇일까? ‘자율성’, ‘협동’, ‘지속가능성’이라고 단언한다. 전 세계의 농업이 현대화와 산업화의 길을 걸어오면서, 현재와 같은 지구적 차원의 먹거리 체계가 형성되었다. 농민이 농사짓고 살아가는 방식에 큰 변화가 있었고,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위기가 도래했고, 농민의 자율성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농업 자원을 형성·관리하며, 시장을 피할 수는 없으나 예속되지는 않는 농사를 지으며, 농촌 환경과 지역사회를 이웃과 함께 돌보고 가꾸면서, 보람과 긍지를 찾는 새로운 농민”의 출현을, 나는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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