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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농민에게 ‘비빌 언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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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9년 3월 5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업에 관심 갖고 농촌을 찾는 청년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농지 등의 영농기반, 농사를 배울 기회, 초반 몇 년 동안 살림살이를 지탱할 생활비, 돈 없는 젊은이도 접근 가능한 주택 등이 필요하다. 그래서 농사를 시작하는 청년에게 지원 자금을 제공하고, 농지은행이 우선적으로 2030세대에게 농지를 공급하는 정책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부지기수로 많다. 농촌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청년 쉐어하우스’라는 이름의 주택을 마련해 제공하는 곳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청년 농민을 키워내려는 정책이 쉽사리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농사라는 게 고되게 노력해도 워낙에 밑지는 일이어서, 지원 정책을 펼쳐도 성과를 낙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정책 실행 과정에서 균형을 잃은 것도 문제다. 전국 1,600여 명의 청년 농업인에게 3년 동안 매월 80만~100만 원 사이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청년 창업농 영농정착 지원 사업’을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농업경영체등록정보에 농업인으로 등재했거나 수개월 내에 등재할 예정인 청년 농업인에게만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제 막 농사를 배우기 시작한 예비 청년 농업인은 그런 자격을 갖출 수 없다. 자본이 없어 마을 어르신에게 농지 약간을 임차해 농사를 시작한 청년도 자격이 없다. 한국농어촌공사를 통하지 않은 농지 임대차는 합법으로 인정받지 못해 농업경영체로 등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농지 임대차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 그들의 경제적 상황이 더 곤궁할 터인데 배려는 부족하다. 사정이 이러하니 비교적 영농기반을 잘 갖춘 가업 승계농이 지원금을 찾아먹는 데 더 유리하게 되어 있다며,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언론에서는 ‘묻지마 생활비 지원’이 온당하지 않으며 금액이 과다하다는 지적도 있다.


모처럼 어렵사리 마련한 청년 농업인 육성 정책이 시행된 지 1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이런저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한 명의 농민이 탄생하기까지 거쳐야 할 오랜 경험과 학습의 과정을 도외시하고 ‘돈만 주면 알아서 잘 정착해 농사지으며 살 것’이라는 식의 안이한 발상도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 보조금 정책이 지켜야 할 ‘보충성의 원칙’, 즉 지원 대상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해결하게 두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만큼의 몫에 대해서만 돕는다는 원칙을 무시한 탓도 있다. 그런데 정말로 간과한 게 하나 있다. 농촌에서 청년을 키워내는 교사, 멘토, 후원자, 응원단 등의 역할은 진정 누구의 몫이냐는 문제다.


한 청년이 마을에 들어와서 농사짓고 사는 일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이 선택은 개인적인 일로 끝나고 마는 게 아니다. 농촌 마을에 귀농인 한 사람이, 특히 청년이 들어오면 그 지역사회는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농촌 지역사회가 워낙 작은 세계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농촌 지역사회에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은 여전히 주민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바탕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농지 점유는 이웃한 농민의 중장기 영농 계획이나 전망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신참자가 농사짓기 시작하면, 그 영농활동은 금세 이웃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수반한다.


농사는 자연과의 상호작용이기만 한 게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이기도 하다. 고립된 채로 혼자 농사지으며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청년 농민에게는 더욱 그렇다. 영농에 투입하는 자원의 상당 부분은 사회적 관계를 매개로 동원된다.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서 판매하려고 해도 사회적 관계가 필요하다. 도시와 달리 농촌에서는 ‘마을’ 또는 ‘지역사회’라는 말은 여전히 규범적 구속력을 갖는다. 마을회관, 방죽이나 저수지, 마을길, 농경지의 관개배수로 등을 청소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운영관리하는 것은 고스란히 농촌 지역사회의 몫이다. 그래서 지역사회 구성원의 논의와 협동은 사회적 의무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마을에 새로 들어오는 것은 신참자 개인만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 없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청년의 신규 취농은 농촌에는 중요한 기회다. 지역의 농사를 이어나갈 사람이 부족하고, 마을과 지역사회의 온갖 대소사를 치러낼 사람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 농민의 정착을 돕는 일은 농촌 지역사회의 숙제가 된다. 부지런히 농사짓고 이웃과 어울리면서 사는 삶으로써 농촌을 지속시킬 청년을 찾아내고, 안내하고, 돌보고, 가르치며,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그 모든 일에 농촌 지역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농업과 농촌의 삶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적지 않은데, 이구동성으로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다.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을 시작하거나 이룰 수가 있다는 뜻이다. 정책은 청년에게 특정한 자원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비빌 언덕’이 되기는 어렵다. 정책은 필경 자격을 따지고, 점검과 감독을 수행하며, 실적이나 성과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비빌 언덕’ 혹은 ‘의지할 곳’이란 그렇게 형식적으로 따지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통합적으로, 실제적으로 도움을 제공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누가 ‘비빌 언덕’을 만들어야, 아니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할까? 혹은, 청년 농업인 지원 수단들이 ‘비빌 언덕’을 통해 제공되도록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는 없을까? 혹은, ‘비빌 언덕’을 만들도록 농촌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정책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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