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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농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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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9년 2월 7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라는 말이 있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운운하는 말은 농사를, 농민의 삶을 곡해하거나 폄하하는 흔한 말 중 하나로 등재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저 말을 뒤집어 보면 건질 만한 뜻이 조금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할 일이 없다는 건 생계가 막연하다는 뜻이다. 요즘엔 그렇지 않지만, 수십 년 전 한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사짓던 때에 딱히 생계를 이어갈 방도를 찾지 못하는 이에게 농사는 상당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음을 방증하는 표현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농사일 경험이 있어서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고, 비록 생활은 곤궁할지언정 논 몇 마지기 있으면 끼니는 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절이 한국 현대사에서 잠깐 있었다는 말이다.


농사는 갑남을녀라도 의지할 수 있는 보편적인 생계 수단이었으니,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을 그런 시각에서도 조명할 수 있겠다. 일자리가 없어서 끼니를 걱정할 처지에 놓이고, 일자리가 없어서 어느 한 곳에 뿌리내려 살지 못하고 배회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는 이 시대에 생계를 의지할 농사라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을까? 다만, 이젠 아무나 농사를 시작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생계 수단을 찾는 이에게도 권농(勸農)하기가 쉽지 않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에 나오는 생계농(subsistence farming)의 정의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생계농이란 작은 필지에서 자신의 필요만을 충족할 만큼 짓는 농사 형태다. 생계 농업에서는 판매하거나 거래할 만큼 남는 먹거리가 생산되지 않는다. 이는 농사를 통해서 물건을 구매할 돈을 벌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시장 교환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도 유지되는 가계(家計)를 이젠 상상하기 어렵다. 화전민이나 머슴처럼, 생계농은 오래 전에 사라진 생활양식이라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어느 인터넷 포털에서 ‘생계농’이라는 열쇳말로 자료를 검색하면, ‘농업경영’이라는 올림말을 설명하는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난날의 우리의 농업경영의 주된 목적은 가족의 식량 확보를 비롯한 생계의 유지에 있었으나 근래에는 소득이나 이윤을 높이기 위한 영농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따라서 영농방식은 생계농 형태에서 상업적 영농 또는 기업적 영농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물론 우리의 대부분의 농업경영은 아직도 가족적 경영에 머물러 있어 농가경영의 성격을 짙게 지니고 있다.”


문장을 잘 살펴보면 일종의 우열 판단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마디[語節]는 ‘아직도’이다. 가족농이란 결국 생계농 성격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농업경영 형태이므로, 오늘날 농업경영에서 ‘가족의 식량 확보를 비롯한 생계유지’를 영농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뜻 아닌가? 말꼬투리를 잡자는 게 아니다. 저 텍스트는 농업이나 농민에 관한 이 시대 주류(主流)의 인식 틀을 잘 보여준다. 나는 그런 틀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생계농을 타매(唾罵)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생계농을 예찬하거나 권하려는 건 아니다. 밥 굶지 않는 것은 매우 중한 일이지만, 굶주림을 면하는 일에 일생의 목적을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년 전 ‘소농(小農)의 자발적 가난’ 운운하는 말이 적지 않게 유행했지만, 그건 쏘로우(H. D. Thoreau)의 후예가 되기를 바랐던 소수의 꿈이거나, 빈곤이나 악화된 삶의 질 여건에 맞서 무언가 바꾸어보려는 의지나 동력을 상실한 이들의 ‘정신승리법’일 뿐이다. 아무래도 권할 만한 일이 못된다.


2019년 기준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한 달 기준으로 약 171만 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것으로, 이때 최저생계비란 말 그대로 영양학적 필요만 충족하는 수준의 최저생계비는 아니다.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뜻한다. 그보다 엄격한 의미의 최저생계비 중 하나로 법원이 정한 최저생계비가 있다. 1인 가구 한 달 기준으로 약 102만 원이다.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간 사람에게 소득이 생겼을 때 채무 변제에 쓰지 않고 생활에 쓸 수 있는 금액이다(소득-생계비=변제금). 법원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한국의 100만 농가 중 최저생계비 만큼 소득도 얻지 못하는 농가가 몇이나 될까? 가구원 수에 따라 최저생계비가 달리 산정되므로 계산이 복잡해질 터이지만, 보건복지부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할 때 한국 농가의 23.7%가 최저생계비에도 미달하는 (농업소득이 아니라) 농가소득을 얻는다고 몇 년 전에 보고된 바 있다. ‘생계농’이라는 말이 연상된다.


생계는 누구에게나 엄중한 사안이다. 따라서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것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결코 말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계농이 농민이나 농정의 목표일 수는 없다. 생계는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지, 도달해야 할 최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농촌에 사는 다수 생계농의 처지를 간과하고, 포장만 번드르르한 ‘무슨무슨 팜’을 내세우는 것은 더 허황된 일이다. 우선, 당장에 살펴야 할 것은 ‘농사지어서 생계가 되느냐’의 문제다. 농사지어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어야 ‘생계농’이라는 말이라도 갖다 붙일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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