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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지역사회를 돌보는 농민의 농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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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8년 12월 11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업사(農業史)를 전공한 선배 학자에게 이렇게 부탁드린 기억이 난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 농업‧농촌의 변화를 한 마디 문장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짧은 답변을 들었다. “농업은 발전했고, 농촌은 해체되었다.”


통계 지표만 보면 한국 농업은 수십 년 동안 크게 성장했다. 반면에, 농촌 지역사회는 심각한 해체 위기에 노출되었다. 농업이 발전하면 농촌도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수만 평 농경지를 헤쳐 다니는 110마력짜리 대형 트랙터도, 안방에 앉아서 손가락으로 온실 생육환경을 제어한다는 스마트팜도, 가락동 농산물 도매시장에 줄지어 기다리는 대형 트레일러와 현대화된 농산물 물류 체계도, 농촌 주민 삶의 질과는 관계없는 공허한 이미지다.


학교와 약국과 상점이 문을 닫고, 끼니와 이불 빨래를 못 챙기는 노인이 많고, 아이들은 방과 후에 그저 방치되고, 동네 할머니가 읍내에 나가려면 왕복 2차선 지방도로를 지나는 승용차라도 붙잡아야 하고, 한 해에도 수천 명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발달장애 청년은 하릴없이 백수로 지내거나 어디 다른 곳으로 보내져 격리되는 상황에서, 물색없이 떠드는 ‘농업 발전의 이야기’는 헛되고 헛된 말이다.


이쯤에서 ‘농업’과 ‘농촌’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변(强辯)하는 반론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농업은 발전하는데, 농촌은 해체되는 역설’이 바로 그 ‘별개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가령, 학교가 문을 닫고 그나마 남은 아이들도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이지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학교를 유지하거나 없애는 결정은 교육 당국의 책임이지만, 시골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농민의 아들딸 아니던가? 나이 들고 병들고 빈곤한 처지여서 여러모로 운신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은 사회복지 계통 종사자들의 임무이지만, 그 어르신들은 얼마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농민 아니던가?


우리는 저마다의 직능이 뚜렷하게 나뉘고 갈라진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농사는 농업인에게! 이처럼 사회 체계가 기능적으로 분화되는 것은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성립한 이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분화는 불통의 씨앗을 간직하기 마련이며, 전문화는 폐쇄성의 암초를 만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사회 체계의 기능적 분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분화 과정을 잘 제어하고 관리하는 체제(regime)가 중요하다.


농촌 지역사회에서 각자의 직능에 충실한 주민들이 많지만, 그 사이에 소통과 개방성을 장려하고 드높이는 실천이 더불어 펼쳐져야 한다. 현재의 기능을 성찰하고 재해석함으로써 기존의 경계(經界)를 뒤흔들고, 그어진 금을 밟았다고 비난받거나 처벌당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이라고 상찬(賞讚)되며, 한 동네 살아도 하는 일이 다르다며 안 만나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궁리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회 혁신(social innovation)의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 혁신이라는 게 어찌 보면 별 것 아니다. 노인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한 어느 면(面) 지역 파출소장은 홀로 사는 빈곤층 노인 집집마다 순경을 정기적으로 보내 안부를 살피는 ‘문안 순찰’ 제도를 운영했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용의자를 검거해야 할 경찰이 농촌 노인들 안부를 챙기고 다녔으니, 사회복지사의 업무 영역을 침범했다고 비난해야 하는가? 경찰 본연의 업무는 업무대로 수행하면서 노인들 안부 인사를 챙긴 것은 질서를 위반한 게 아니다.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런 사례를 두고 혁신이라 부른다.


마찬가지 논리로, 농사짓는 농민이 지역사회의 아동들(알고 보면 한두 집 건너 아는 집 자식이다)을 농장에서 돌보고 가르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는 농민더러 교직이라는 울타리를 침범했다고 비난할 텐가?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은 “내 소원은 자식이 죽을 때까지 안 죽고 살다가, 자식 죽으면 그 다음 날 죽는 것이다”라며 탄식한다. 고등학교 졸업한 발달장애 청년을(역시, 알고 보면 한두 집 건너 아는 집 자식이다) 일주일에 3~4일 농장에 와서 소 먹이 주고, 풀 뽑고, 농사일 거들고, 밥도 같이 먹고, 소액이라도 임금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권할 수 있다. 그렇게 농사일도 조금 하고 농장 식구들의 돌봄을 받는다고 해서, 장애인 복지 영역을 농민이 넘보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농사짓는 사람이 농민이지만, 농민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를 돌볼 수도 있다. 그런 혁신적 실천을 두고 ‘사회적 농업’이라고 한다. 농민만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다. 농민만의 힘으로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농민과 더불어 농촌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가 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 실천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이 어울리는 그런 협동이 반복되고 쌓여서 농사가 교육이 되고, 농사가 돌봄이 되고, 농사가 문화가 되는 지역사회를 두고 비로소 ‘공동체’라고 부른다. 그런 공동체라야 농업 발전이 농촌의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매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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