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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형 그라운드 워크’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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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남도일보 기고 | 2018년 9월 20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 전남도지사 한 분이 말씀하시길 “혁신도시 나주 입지는 단군 이래 최대의 축복”이라고 했다. 광주·전남공동(빛가람)혁신도시가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나주는 확실히 과거와는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얼마 전에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던 지역소멸위기 지자체에서 나주는 예외였다. 혁신도시가 입지하지 않았다면 나주 역시 지역소멸위기 지자체로 분류됐을 것이다. 1천년 전에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전라도라 명명한 것은 천년 후인 오늘을 미리 내다 보고 한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전국 혁신도시 가운데 가장 빨리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공공기관과 거기에 종사하는 임직원이 이전해 오고 인근 주민이 가세해 혁신도시의 인구는 3만명을 넘어 섰다. 좁은 공간 안에 출신 배경과 하는 일 그리고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살고 있다.


같은 장소에 사람이 모여 살면 자연히 구성원들간의 사회적 교류와 공통의 연대의식이 생긴다. 지역에 바탕을 둔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공동체는 구성원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역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빛가람 혁신도시가 만들어진 지 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빛가람 혁신도시를 하나의 공동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혁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사이의 사회적 교류나 소속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직원의 상당수는 이 지역 주민과는 다른 자기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가운데는 나주는 직장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고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곳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나주 원도심이나 광주 등에서 이사 온 주민도 혁신 도시 주민으로서의 공통의 연대의식은 약한 편이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우리나라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물리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 도시의 골격이 튼실한 만큼 혁신도시는 두고 두고 그 값어치를 발휘할 것이다. 하지만 혁신도시가 말 그대로 혁신의 온상이 되고 그래서 주민이 정말로 살기 좋고 정감이 가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어떤 끈이 필요하다. 이를 사회적 자본이라고 말할 수 있고 지역 공동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출신 배경이 어떻든 하는 일이 무엇이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의 발전을 위해 같은 방향을 보고 함께 간다는 마음가짐이다.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위한 방안으로 가칭 ‘나주형 그라운드 워크’를 제안한다. 그라운드 워크는 1980년대 영국에서 시작한 실천적인 환경 개선 활동이다. 주민, 행정, 기업이 파트너쉽을 형성해 지역의 환경문제를 실천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으로 풀뿌리 민주주의 한 형태이다. 그라운드 워크가 수행하는 환경개선활동을 통해 지역의 비전이 공유되고 지역 공동체가 튼튼해지는 효과도 있다.


빛가람 혁신도시는 쓰레기소각연료 문제에서처럼 어떤 이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은 분출하지만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리하고 실천하는 힘은 약한 편이다. 혁신도시의 비전을 이끌어 내고 이를 실천하는 조직화된 주체세력의 형성이 미진하기 때문이다. 나주형 그라운드 워크는 다양한 계층의 파트너쉽을 통해 주민 여론을 건전하게 유도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주형 그라운드 워크는 처음에는 관심있는 주민과 관련 기관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해 깨끗한 지역 가꾸기와 같이 실천 지향의 소규모 사업을 추진하되 점차 행정과의 파트너쉽을 강화하여 행정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제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나주형 그라운드 워크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닌 혁신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원도심 및 주변부 농촌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상생 방향을 모색하며 건전한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주는 국내 유수의 먹거리의 생산 기반과 세계에서도 통하는 에너지 기관과 농업계의 싱크 탱크 등 기술 산업과 지식 산업 기반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한다(think globally act locally)”는 구호가 나주에서처럼 잘 어울리는 곳도 많지 않다. 나주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나주는 혁신의 온상지가 될 것이다.


혁신 체계가 작동하는 나주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서로 배타적으로 사는 공간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위해 서로 협력하고 배려하면서 같은 꿈을 꾸는 새로운 공동체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이는 기존 주민과 새 주민이 상생하고 농촌과 도시가 공생하며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동체이다.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위해 오늘 나주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열린 마음과 자발적인 행동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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