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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산림녹화 ‘빅 푸쉬’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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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영훈
중앙일보 기고 | 2018년 5월 16일
김 영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오래전부터 선조들은 우리 산하를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일컬어 왔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던 때가 있었다. 한때 우리 주변의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었다. 지금은 모두 풍성해졌다. 요즘 같은 봄철에 여행을 가면 짙푸른 상록수림 사이로 신록이 잘 어우러진 산림을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북쪽의 산은 여전히 삭막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지고 있다.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벌건 민둥산이나 급경사 비탈밭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금강산 관광길에서 마주쳤던 반갑지 않은 장면도 들려주곤 한다. 표토가 유실된 채 풍화된 바위만을 허옇게 드러내 놓고 있던 북한의 산과 땅 이야기다. 

   

북한도 산림녹화 정책과 국민적 노력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일찍부터 북한은 산림을 국토보호림, 임산공업림, 협동조합림, 댐보호림, 기관 담당림 등으로 구분해 세심하게 관리했다. 산림 관리 주체들에게는 강력한 개발 규제도 부과했다. 한국의 식목일처럼 북한은 ‘식수절’을 제정해 국민운동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국민운동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북한 아니던가. 그래서인가 1990년대 경제위기 이전에는 북한의 산림 황폐에 관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경제난이 심화하자 산림이 먼저 희생되기 시작했다. 농촌 가정에 연료 배급이 줄자 가까운 산부터 먼 산까지 차례로 나무가 베어졌다. 나무를 벤 자리는 방치되거나 비탈밭으로 개간됐다. 800만 명이 넘는 농촌인구가 한 세대 가까이 이런 삶을 지속했다고 상상해 보라. 북한의 산림 황폐화가 지금 어떤 상태일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산림청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북한의 전체 산림 면적 899만ha 중 32%인 284만ha가 훼손됐다고 한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 면적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산림 황폐화가 국토의 생태와 삶의 환경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우리는 북한 주민이 겪는 사회·경제적 피해와 환경적 피해를 이미 잘 알고 있다. 산림 황폐와 재해 빈발, 작황 저조, 식량 부족, 연료와 식량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벌채와 개간, 뒤따르는 2차·3차 환경 파괴. 이런 악순환이 북한 주민들 앞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악순환을 방치하면 언젠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종식되고 건강한 상태로 환원되기는 어렵다. 오래전부터 몇몇 국제기구와 시민사회가 나서 북한의 산림 복구를 지원하고 있지만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황폐된 산림 면적은 워낙 넓고 광범위한데 북한의 여력과 외부 지원은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 산림의 복구에 국제사회의 ‘빅 푸쉬’(Big Push·힘 실어주기)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 주장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전문가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마침 한국 정부도 오랜만에 공식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 직후 정부는 정상회담 준비위원회를 판문점 선언 이행추진위원회로 전환했다. 그 첫 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남북산림협력연구 TF’를 만들어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상 선언문에 직접 명시되지 않은 사안에 대한 정부의 후속 조치로 산림협력이 가장 먼저 거론돼 화제가 됐다. 이 발표는 남북 산림협력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환기해줬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북 산림협력 의지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있지만, 산림 협력은 인도적 사안이기에 비핵화 실현 이전 단계에서 미리 검토하고 협의하는 건 문제 없다는 반응도 보인다. 아직은 소극적 응원 단계이지만 산림 협력은 앞으로 적극적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다.


북한 주민과 우리 강산에 가중되는 사회적·경제적·환경적 피해가 더는 방치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북한과 국제사회에 산림협력에 대한 호응과 동참을 당당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남한은 60~70년대 산림녹화에 성공을 이룩해 냈던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지금 다시 시작하면 두 번째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다만 준비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의 산림녹화 성공 배경에 식량과 농촌 연료의 충분한 공급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북 산림협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다른 부문의 협조와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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