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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봄 벚꽃 축제가 씁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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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안현진
이데일리 기고 | 2018년 4월 18일
안 현 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고교시절 우리 학교에는 특별한 전통이 있었다. 봄꽃이 만개할 때쯤 친구, 선후배, 선생님들과 교정에서 꽃사진을 찍는 것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교정 곳곳에 목련, 진달래 등이 피어났다. 탐스러운 꽃들의 아름다움은 새 학기의 긴장감을 녹이고, 친구들과 서먹했던 관계를 가깝게 해 주는 역할을 하였다. 학생들은 교화인 목련보다 조금 늦게 피는 서부 해당화를 더 좋아하였다. 투박한 고목에서 피어나는 화려한 연분홍색의 꽃은 오래된 학교 전통의 상징이었으며, 밤(night) 꽃의 아름다움에 홀려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몰래 교정으로 빠져나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작은 일탈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과거 흔했던 봄꽃 개나리 사라지고 벚꽃나무 즐비 


미국생활을 끝낸 2016년, 오랫만에 국내에서 봄을 맞았을 때 조금 의아했던 것이 있다. 과거 주변에서 보았던 다양한 봄꽃들은 찾기 힘들고, 사방이 벚꽃으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벚꽃은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가로수와 공원수, 아파트 단지의 조경수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벚나무이다. 과거 골목 어귀에 흔했던 개나리는 오히려 찾기 힘들어졌다. 실제로 2016년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로변에 심어진 가로수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벚꽃나무’이다(전국 가로수의 20.2%). 한 연구에 따르면 강원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벚나무류가 가장 많이 식재되었며, 충청북도가 32.4%로 그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바야흐로 이 나라 봄의 전령사는 더 이상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아닌 벚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로수와 조경수로 벚나무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일본 강점기부터이다. 국내에도 자생종이 있었으나 주로 목재로 쓰였고, 관상용으로 활용된 기록은 거의 없다. 유교를 신봉했던 선비들은 화려한 벚꽃보다는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를 좋아했다. 구한말에 쓰인 소설에서 서민들에게 사랑받은 봄꽃은 우리의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 해당화, 동백꽃 등이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90년대 까지도 봄의 상징은 초등학교 교정, 아파트 놀이터, 삭막한 골목길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개나리와 진달래였다. 따라서 요즘 티비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인 봄의 교정에 흩날리는 벚꽃은 나의 추억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최근 들어 편의점에 등장한 벚꽃 빵, 벚꽃 술 등 관련 상품은 흡사 여기가 한국이 아닌 일본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봄꽃을 즐기는데 정치, 역사 등 심각한 논제를 연관짓는 것은 촌스러우며, 외국문화를 접하고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요즘 시대의 경향과도 맞지 않다. 또한 헤이안 시대부터 오랜 전통을 가지고 발전을 거듭한 일본의 벚꽃놀이 문화가 매혹적인 것도 사실이며, 근대 들어 상업적 요소와 결합하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에 부쩍 늘어난 벚꽃이 씁쓸한 이유는 혹시 우리가 해외의 성공사례에 간단히 편승하려 할 뿐 우리 국토와 기후,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고유 수종 발굴 및 관광 상업화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벚꽃 버금가는 우리 국토 대표 조경수 발굴해야


벚꽃 축제가 한창인 봄철마다 왕벚나무 한국기원설이 신문기사를 장식하곤 한다. 유력한 가설일뿐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것을 확고한 사실인 듯 기사화하는 의도는 아마 지역에 상업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벚꽃에 담긴 일본의 이미지를 지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왕벚나무의 자연적 기원이 한국이라 해도, 지금처럼 벚꽃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게 된 바탕에는 일본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야생나무를 옮겨 심는다고 바로 조경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벚꽃 축제를 장식하는 대표 수종이며, 현재 기원 논란이 있는 왕벚나무 ‘소메이 요시노’는 일본 원예가들의 품종 개발 노력의 결실이다. 벚꽃하면 일본이라는 등식이 자연스럽게 성립되는 것도 일본이 벚꽃의 자생지라서가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친 과학적, 문화·외교적 노력을 통해 획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이 벚꽃축제로 들썩이는 현 시점에서 가슴 한편의 불편한 마음을 누르기 위해 국민들을 상대로 원산지 운운하는 것보다 우리 산야의 아름다운 식물들을 돌아보고, 우리 국토를 대표할 수 있는 조경수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품종개량, 역사·문화적 스토리 발굴, 관광 상품화 전략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해마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일본과 일본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또한 이미 성공한 모델을 답습하여 단기간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한국 고유의 나무와 문화를 수출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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