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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과 행동경제학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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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창길
 농민신문 기고 | 2017년 12월 15일
김 창 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전통경제학에서는 선택의 순간이 오면 주어진 여건 속에서 가장 높은 만족과 이익을 얻는 쪽을 택하는 사람을 경제적 인간인 ‘이콘(호모 이코노미쿠스)’이라고 한다. 이콘은 극도로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자기 통제가 뛰어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특징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매사에 의사결정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할까?

행동경제학은 의사결정의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인간이 행동하는 방식에 근거를 둔 선택이론인 제한된 합리성에 기초를 두고 설명한다. 행동경제학을 연구해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할 때 반드시 합리적이지는 않을 뿐만 아니라 이성에 기반하지 않는 의사결정을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경제 주체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태동된 지 40여년 된 행동경제학은 올해 세일러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으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이유는 기존 경제학에서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블랙스완(Black Swan : ‘검은 백조’처럼 극히 예외적이어서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의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다소 생소한 행동경제학은 세일러 교수와 하버드 로스쿨의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함께 집필한 <넛지(Nudge)>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알려졌다. 넛지란 팔꿈치로 옆구리를 살짝 찌르듯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더 나은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 남자화장실 소변기 중앙에 파리 모양을 그려넣은 아이디어다. 남자들이 소변을 보며 변기에 그려진 파리를 맞추려고 노력해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전보다 80%나 줄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고등학교 뷔페식당에서 음식 배열을 바꿈으로써 건강식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비중을 높인 사례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생들이 이콘이라면 음식 배열이 바뀌었다고 해서 선택이 쉽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금융·주식·마케팅·문화·사회보장시스템 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부분에서 이미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중요한 정보와 정책을 국민에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 행동경제학의 통찰을 활용해 제도를 재설계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농업계도 앞으로 선택을 제한하지 않고 바람직한 행동변화를 이끌어낼 효과적인 정책 개입과 고민이 필요하다. 한 예로 아이들이 잘 먹으려 하지 않는 쌀을 먹이려면 영양성분을 토대로 한 과학적인 설명과 설득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만화나 동요 같은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쌀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행동경제학은 농업계에서 아직은 다소 생소하고 전문적인 분야다. 그렇지만 우리 농업과 농촌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인식해 관심을 두고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심리적인 만족감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비합리성을 역이용해 농업과 식품, 그리고 농촌분야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생산과 소비에 이르기까지 팔꿈치로 옆구리를 살짝 찌르듯 자연스럽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기 위한 농업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행동을 유도하는 게 넛지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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