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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개입’과 농업·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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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송미령
농수축산신문 기고 | 2017년 11월 7일
송 미 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농촌정책연구본부장)


얼마전 올해의 노벨경제학상을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시카고대학교 교수가 수상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세일러 교수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과 함께 2008년에 출간했었던 ‘넛지(nudge)’가 다시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넛지란 사전적 의미로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고 돼 있다. 세일러 교수는 이를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라고 다시 정의하면서 정책 결정자들이 개인의 의사결정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현명한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경제학적 용어로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넛지를 행한 대표적 사례로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학교 영양사가 교내 식당에서 음식의 위치를 바꾼 실험이다. 음식의 종류는 바꾸지 않고 오로지 음식의 진열이나 배열만 바꾸었는데, 놀랍게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이 25% 증가하거나 감소했다고 한다. 영양사가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교육하거나 설득하지 않고도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우리 농업·농촌은 농축산물과 관광휴양 공간으로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다. 소비자가 더 좋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 농업·농촌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러 이유로 쌀 소비가 갈수록 줄어들어 급기야는 생산조정제까지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여름에는 배추김치보다는 열무김치를 먹자고, 농촌 체험휴양마을로 휴가를 가자고 감성에 호소하는 캠페인을 많이도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은 대세를 바꿀만큼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넛지의 핵심은 소비자가 의외로 비합리적이고 자기통제가 불가능한 결정을 함으로써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심리를 이용해 개입하는지 알지 못하게 부드러운 개입을 해야 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우리 농업·농촌의 중요성과 소비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어쩌면 넛지에 가장 반하는 전략이다. 소비자에게 호소하거나 설득하지 않고 부드럽게 개입해 우리 농축산물을 그리고 우리 농촌을 비싸게 자발적으로 소비하도록 만들 수 있는 팁이 넛지에 있지는 않을까를 생각해볼만하다.

쌀 소비를 촉진하려면 아침밥 먹자는 막연한 캠페인보다 맛있는 아침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면 된다. 다른 농축산물의 소비도 마찬가지이다. 영양사의 넛지 실험에서 입증되듯이 근사하고 세련된 포장과 진열장에서의 위치 바꿈만으로도 농산물 판매량은 꽤 달라질 수 있다. “농촌 체험휴양마을로 오세요”라는 홍보보다는 자발적인 방문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넛지만으로야 농업·농촌의 문제를 어찌 다 해결할까만은 그리고 누군가는 근본적인 농업·농촌 문제에 지극히 부분적이고 한가한 소리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한 학자가 던진 역발상의 새로운 분석은 의외로 큰 반향을 불러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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