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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농업, 의의와 정책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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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KREI 논단 | 2017년 9월 19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81번째 국정과제 ‘누구나 살고 싶은 복지 농산어촌 조성’의 세부 내용으로 포함된 것이 그 징표다. ‘사회적 농업’이라는 말이 신문에 처음 등장한 게 2012년 무렵이고, 국내 학술논문에서 처음 언급된 게 2013년이다. 2018년부터 ‘사회적 농업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기획이 아주 급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농업에 대한 이해(理解)나 논의의 밀도가 관심이나 기대의 크기에 비례하지는 않는 듯하다. 사회적 농업이라는 실천이 무엇이며 어떤 의의를 지니는지를 먼저 짚어보아야 하는 이유다. 

오래 전부터, 농업은 농촌 지역공동체 내부의 연대(solidarity)를 가능케 하는 매체적 활동이었다. 품앗이나 두레처럼 농업 생산과정에서 형성된 공동노동 조직이나 관행을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점심밥 풍성하게 갖춰, 때 맞추어 배 불리소. 일꾼의 처자 권속 따라와 같이 먹세. 농촌의 후한 풍속, 몇 말 곡식을 아낄소냐.”라는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은 옛 농촌의 표상으로만 추억될 뿐이다. 사회 통합(social inclusion)은 현재의 농촌에서는 자연스러운 문화적 특징이 아니다. 오히려 농촌 사회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꼭 갖추어야 할 필요조건이 되었다. 물론, 사회 통합은 농촌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의 과제다. 

농촌에 살지 않는 사람도 농업이나 농촌의 생활을, 요즘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하게 알고 이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농업․농촌에 대한 친숙함과 공감이 줄어들면 우호적인 입장도 줄어든다. ‘농업․농촌 정책을 확대한다고 가정할 때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느냐’는 설문에 대한 도시민의 우호적 응답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 흔히 거론되는 사례다. 이 같은 농업과 사회의 이격(離隔), 즉 농업의 사회적 위기는 경제적 위기, 환경적 위기와 더불어 한국 농업이 직면한 삼중 위기의 하나가 되었다. 

사회 통합의 필요성 그리고 농업의 사회적 위기, 이 두 요인이 사회적 농업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다. 사회적으로 배제된 이들을 사회 안으로 끌어안는 것을 사회 통합이라고 한다. 사회적 농업은 당연히 사회 통합을 지향하는 농업이다. 가령, 일자리가 없는 이를 농장에서 고용해 영농에 종사하게 하는 실천을 ‘노동통합형 사회적 농업’이라고 한다.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거나 사회 적응에 장애를 겪는 이들에게 농업의 치료적 요인과 결합된 돌봄(care) 및 치료(theraphy) 서비스를 농장에서 제공하며 궁극적으로는 재활을 돕는 실천을 ‘돌봄 사회적 농업’이라 한다. 직업이 필요하지만 기술․지식 등 능력이 부족한 이에게, 혹은 농업이나 농촌을 접한 적 없는 도시의 아동․청소년 등에게 농사를 가르쳐 직업을 얻게 하거나 전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농업․농촌에 대한 정당한 가치 인식을 얻도록 돕는 실천을 ‘교육 사회적 농업’이라고 한다. 농업활동이 사회 통합의 유용한 수단으로 작동하는 그만큼 농업과 사회의 간극도 좁힐 수 있으리라. 

사회적 농업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은 유럽 국가들이다. 사회적 농업이라는 용어가 유럽에서 기원했다. 다양한 주체들이 다양한 동기에서 사회적 농업을 실천해 왔기에 국가마다 그 양상이 다채롭다. 일본에서도 ‘농복연계(農福連繫) 정책’, 즉 농업의 사회 통합 기능을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물론, 한국에도 사회적 농업 실천이 있다.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농업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조직적 움직임이 사회적 경제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다. 농업 부문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 자활기업 등의 사회적 경제 조직 수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약 200개 정도일 듯하다. 어린이, 청소년에게 농업을 알려주려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교육농장(pedagogical farm)도, 그 수준이나 성격을 논외로 치면, 어쨌든 621개나 된다. 직업 교육훈련 차원에서 농업을 가르치는 교육농장(vocational training farm)의 수는 적지만, 근년 들어 귀농 흐름과 맞물려서 그리고 청년 신규취농자 지원 정책이 형성되면서 늘어날 전망이다. 돌봄형 사회적 농장은 유럽에서는 사회적 농업의 대표적 유형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한국에서는 그 수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유형의 실천 주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농민 또는 농민들의 협동조직이 만성 정신질환자, 장애인 등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 사회복지기관이 농업 생산 활동을 직접 수행하면서 불리한 입장에 놓인 이들의 재활을 도모하기도 한다. 생활기반이 거의 없는 탈북민에게 농업을 가르쳐 정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장애인과 가족들이 농촌에서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농업을 영위하는 곳도 있다. 

두텁지는 않으나 사회적 농업 실천이 확산되기 시작한 지금,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까? 첫째, 사회적 농업 정책의 대상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해야 한다. 사회적 농업의 개념은 폭넓게 정의할 수 있지만, 정책이 실제로 접근해야 할 영역을 넓게 잡을수록 실행 가능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미 시행되는 기존 관련 정책과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하고 통합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가령, 노동통합형 사회적 농업 실천을 사회적 기업 육성 정책이 이미 지원하고 있는데, 그것은 현재 농업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 정책의 범주에 포함되어 있다. 

둘째, 사회적 농업 영역에서 실천 주체들이 활발히 나서도록 촉진하는 게 중요한 정책 과제일 텐데, 어떤 주체를 지원할 것인가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돌봄 사회적 농업을 개별 농가들이 실천하도록 지원할 수도 있고, 사회복지기관들의 참여를 독려할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주체의 협력을 전제로 지원 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농가의 물적 여건이 불비(不備)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네덜란드처럼 개별 농가의 사회적 농장 경영을 주요 모델로 삼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단언키는 어렵지만, 한국의 현실에서는 여러 주체들이 협력하는 협동조합 방식의 사회적 농업 주체 형성 전략이 적실할 듯하다. 물론 사회적 농업 주체 형성을 돕는 정책은 어떤 내용이 되든, 다른 분야의 여러 정책과 마찬가지로, 주체들의 자발성을 전제해야 한다. 

셋째, 사회적 농업이 낳는 편익은 대부분 시장에서 화폐로 교환되기 어려운 것들이다. 즉, 사회적 농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부분 시장 상품이 아니라 공공적 서비스의 성격을 지닌다.  자주 소개되는 네덜란드, 이탈리아, 벨기에 등의 돌봄 사회적 농업이 활성화된 데에는 실천 주체들의 헌신과 노력 외에도 서비스 제공에 대한 보상 메커니즘을 공공 부문이 체계화시킨 것이 한몫을 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필경, 언젠가는 보건복지 분야의 여러 제도와 연계, 조정, 통합 등의 시도를 꾀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이해당사자들이 경쟁하는 게 아니라 협력해서 창의적인 대안을 만들어내는 사회혁신의 분위기가 성숙되어야 그 같은 제도 변화도 가능할 것이다. 

넷째, 제도 정비의 완급 문제가 있다. 사회적 농업이 일정한 법제 정비와 더불어 확산될 것임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드러나는 실천의 두께를 고려해 법제 정비의 타이밍을 결정해야 한다. 실천은 박약한데 지원 정책만 성급하게 추진해서 알묘조장(揠苗助長)의 결과가 되거나, 대상자는 몇 되지 않는데 복잡한 자격 제도나 규제를 만들어서 실효 없는 제도로 전락하고 만 사례들을 우리는 이미 숱하게 경험한 바 있다.


* 이 글은 농경나눔터 농정시선(2017.9.1.)의 글을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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