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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정책의 무게중심, 더불어 지키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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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김정섭
강원도민일보 기고 | 2017년 1월 17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사건은 반복된다. 탐욕, 안전불감증, 위기대응체계 부실 등이 겹쳐 빚어낸 대형 참사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1995년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501명이 죽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302명의 인명을 또 잃었다. 사고의 원인은 비슷했다. 엄청난 인재(人災)가 되풀이될 때 위험사회의 징후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다. 반복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귀농 문제도 마찬가지다. ‘직장을 잃은 은행원과 회사원, 사업을 포기했거나 부도를 낸 자영업자,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 등이 도시를 등지고 농촌으로 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각 시군 농업기술센터에는 영농상담 내방객과 문의전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문장은 1998년의 한 신문 기사에서 따온 것이다. ‘삶이 다 망가진 사람들은 산골마을의 고향을 떠났고, 아주 할 수 없이 더 망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소설가 김훈이 자전거로 여행하던 중에 어느 산골의 귀농인을 만나고 쓴 글이다. 그 책은 2000년에 출판되었다. 이른바 ‘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 귀농 인구는 잠시 급증했다가 다시 감소했다. 동네마다 한둘씩 조손(祖孫) 가구를 남긴 것 말고는 농촌에 별다른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8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흔들었다. 귀농 인구가 또 폭증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귀농 가구 수가 1만 가구를 넘었다. 2016년에는 전년 대비 11.2% 증가했다. 경제가 안 좋으면 실업자가 늘고 귀농 인구가 증가한다. 사건은 반복된다.
 

길게 보면 귀농 인구 증가는 환영할 일이다. 수백 년 걸릴 산업화를 수십 년 만에 이룬 압축성장, 거기에는 이촌탈농(移村脫農)의 아픈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농가 100가구 중에 경영주 연령이 40세 미만인 청년 농가는 두 가구도 되지 않는 게 농촌의 실상이다. 사람이 없어 읍내 시장이 사라지고 시골 학교가 문을 닫는 것쯤은 흔한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연유야 어쨌든 귀농은 반가운 일이다. 사람 없는 농촌에 새로운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를 품을 만도 하다. 그러므로 귀농을 장려하고 촉진하기만 하면 농촌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도 될까?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오히려 귀농대란(歸農大亂)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농촌 생활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결코 만만치 않은데도 도시에서 농촌으로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기 때문이다.
 

정부와 농촌 지방자치단체들은 금전을 미끼로 귀농 촉진에 또는 귀농인 유치 경쟁에 뛰어드는 것을 정책이라고 내세우면 안 된다. 여행사가 모객하듯, 백화점이 할인행사에 열을 올리듯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 농촌을 찾아 온 이들을 보살펴 정착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귀농인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단촐 하나마 그럭저럭 살림살이를 유지할 수 있어야 ‘정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귀농인들이 나름의 역할을 맡아 지역사회에 기여하도록 이끄는 데에 귀농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귀농인이 스스로를 ‘귀농인’이라 하지 않고 ‘○○마을 사람’이라고 부를 때 귀농은 완성된다. 토박이 주민을 함께 배려하는 가운데 지역사회의 화합을 꾀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회복을 시대의 과제로 제출했던 신영복 선생의 1주기 추모전시회가 열렸다. 선생은 마지막 작품 속에 작은 글씨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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