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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유효한 정약용 "삼농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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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지성태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6년 9월 30일
지 성 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여름 폭염을 뒤로 한 채 가을의 초입에서 추석연휴를 맞았다. 하지만 명절을 맞아 농촌에 고향을 둔 이들의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농산물 소비 위축이 우려되고 있고, ‘풍년의 역설’에 따른 쌀 가격 폭락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일부 지역은 지진 피해로 명절 분위기가 반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어김없이 귀성 행렬이 이어졌고,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민족의 대이동을 또 다시 경험해야 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러한 진풍경이 언제까지 이어질까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졌을 것이다. 농촌인구의 감소세가 지속되면서 머지않아 고향은 있으되 반겨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와 부모님 고향 간의 연결고리는 더욱 약해지기 때문이다.
 

농업·농촌의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대략 점쳐볼 수 있다. 필자는 이번 추석연휴를 통해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직접 목도하였다. 필자의 고향은 강원도의 전형적인 농촌 자연부락이다. 과거 20여 개에 달하던 가구 수는 현재 7가구로 줄었고, 최근 귀농·귀촌한 2가구가 더해져 그나마 마을의 모양새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가장 젊은 주민은 곧 환갑을 바라보고, 80세를 넘긴 독거노인도 두 분 계시다. 이는 향후 20년 내에 마을이 사라지질 수 있음을 짐작케 한다.
 

마을 인구가 줄면서 방치되는 농지도 늘고 있다. 가구 수가 많았을 때는 농지 이용률이 상당히 높았고,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도 알뜰하게 경작되었다. 추석 즘하여 들녘에 추수를 앞둔 농작물로 가득해야 하지만, 잡초만 무성한 농지가 적지 않다. 임대료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임차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고령화로 본인 소유의 농지조차 경작할 여력이 없는 농가도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을 지키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필자의 마을은 집성촌이다. 그래서 마을 구성원들 간의 유대관계와 공동체의식이 강한 편이다. 추석 전날 마을 안길과 진입로, 상수원 주변을 청소하고 풀을 제거하는 등의 마을 공동행사에도 적극 참여한다. 이는 마을의 중요한 연례행사이며, 과거에는 일종의 ‘부역(賦役)’으로 집집마다 장정 한 명씩 동원되었다. 그 때는 마을 주민들만으로 충분했지만, 언제부턴가 고향을 찾은 이들이 힘을 보태야 하는 ‘큰’ 행사가 되어버렸다. 올해는 참여 인원이 더 줄어 반나절이면 끝났어야 할 작업이 한나절이나 소요되었다. 이와 같은 전통도 언젠가는 기억 속에만 남지 않을까 싶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들을 위한 마을 ‘이미지 관리’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외지로 이주한 이들의 왕래가 줄어들면서 추석을 앞두고 마을 주민에게 ‘벌초’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대가로 수고비가 통장으로 입금되고 ‘대목’을 맞은 마을 주민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농외소득원’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요는 있지만 이 ‘부업’을 감당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마을 주민들이 고령화되었다. 이는 고령화와 농업 수익성 저하가 맞물리면서 농가소득이 감소한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한편, 남의 힘을 빌리면서까지 조상에게 성의를 표현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미풍양속조차 유지하기 어렵다면, 머지않아 무연고 묘지만 남지 않을까?
 

올 차례상에는 ‘족보’ 없는 과일 하나가 올랐다. 용과라는 열대과일로 부모님이 처음 보시는 과일이라고 하니 차례상을 받는 조상님들께서는 더 더욱 생소했을 것이다. 그 원산지가 우리나라 진주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용과가 차례상에 올라가면서 ‘족보’ 있는 차례음식 하나가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이 상황과 수입산 농식품이 우리네 식탁을 점령하면서 국산이 그 자리를 내어줘야 하는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최근 국내 소비자들의 국산 농산물의 구매 충성도가 점차 하락하는 것처럼, 차례상을 차릴 때도 격식보다는 편의성과 실용성을 중시하게 된다면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柿)’를 더 이상 읊조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상 명절을 통해 본 농업·농촌·농민의 현실을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그 변화의 대세를 거역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농민의 수는 줄어들고 농촌 공동체는 약화되고 농업생산 활동은 위축되어갈 것이다. 만약 이러한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그 변화의 속도만이라도 늦출 수는 없을까? 20년, 30년 후에도 교통 정체의 수고스러움을 마다하지 않고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조선시대 실학자 정약용의 삼농(三農)정책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농사 짓기가 수월해야 하고(便農), 농업의 수익성이 높아야 하고(厚農), 농민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어 한다(上農). 이와 같은 삼농정책이 실현될 때 비로소 후계농이 많이 늘어나 우리 농업·농촌이 유지되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기고(2016.9.30.)를 일부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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