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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겹지 않은 풍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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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경기일보 기고 | 2016년 9월 20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풍년이 왔네 풍년이 왔네 금수강산으로 풍년이 왔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고 좋다. 명년 춘삼월에 화전놀이를 가자’ 가을이 오면 자주 듣는 풍년가의 첫 소절이다. ‘올해도 풍년 내년에도 풍년. 연년연년(年年年年)이 풍년이로구나’하는 풍년가의 두 번째 소절처럼 작년에 이어 올해도 사상 유례없는 풍년이 예상된다.


언제부터인지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풍년은 그리 달갑지 않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소비되지 않은 쌀이 창고에 그득한데 올해 또 풍년이 된다면 가격이 떨어질 것은 뻔한 이치이다. 앞으로 1달 안에 대형 태풍이 오지 않은 한 금년 쌀 생산량은 작년과 거의 비슷하거나 많을 것이라고 한다. 정부가 개입해서 쌀 재배 면적을 줄였는데도 농사 기술의 발달로 면적당 쌀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선의의 노력이 결과적으로 전체의 손해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농업 현실이다.


세계화와 무역 자유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 우리 주위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라는 명절 차례 상에도 밤, 대추, 사과, 배 대신에 바나나, 망고, 오렌지 등 외국산 과일이 올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래저래 국내산 먹거리에 대한 소비는 줄어만 가고 있다. 줄어든 국내 시장을 놓고 산지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태풍이나 우박과 같은 자연재해가 어느 지역에 피해를 미치면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은 내심 기뻐한다. 다 같이 잘 살자는 미덕은 사라지고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농업 여건은 나빠지고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봄여름의 푸른 들판, 가을철의 황금물결이 출렁거리지 않는 우리의 국토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세계에서도 인구 밀도가 몇 번째 가는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답답함을 덜 느끼는 것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의 전원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는 끊임없이 사람의 손길로 가꾸어지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참여할 때 아름다움과 개성은 배가 된다. 선진국의 농촌이 아름다운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행동 할 수 있는 체제가 잘 갖추어 져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의 국토가 그래도 이만큼 유지되는 것은 수많은 농민들의 수고 덕분이다. 농촌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끊임없는 손놀림에 사계절 아름다운 농촌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금년 쌀 수매가격을 놓고 또 한 번의 국가적인 홍역이 예상된다. 벌써 이른 벼를 수확한 농민들은 작년에 비해 형편없이 떨어져 버린 가격에 탄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먹거리 생산으로만 농업을 바라보고, 수요와 공급으로만 농산물을 재단하면 농업과 농민들의 설자리는 갈수록 줄어든다. 더불어 아기자기한 농촌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즐거움도 줄어들 것이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때이다. 국민 모두가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국토를 가꾸는 관점에서 농업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전국의 모든 농민들에게 전원 박물관의 학예사 자격이라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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