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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EI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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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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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시현
경기일보 기고 | 2016년 8월 18일
박 시 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대외협력실장)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연일 폭염이 계속되었으며 기상 관측 기록을 갱신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열대야로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쳤다. 필자가 사는 10층 아파트 밖은 푸른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푸른 들판에서 부는 바람 덕분에 70 몇 년 만의 더위라던 이번 여름을 어렵지 않게 보냈다. ‘오! 푸른 바람 불어와 푸른빛 물결 일으킨다네, 오! 온통 푸른 이 목장 수풀은 잘도 자랐네. 아파트 거실에서 푸른 농경지를 바라보고 있으면 중학교 때 배운 푸른 목장이란 노래 말이 절로 떠오른다.
 

겨울철 농촌은 생기발랄한 도시에 비교하면 쓸쓸하기 그지없다. 농작물을 수확하고 난후의 빈 농경지와 여기 저기 비어 있는 집들이 을씨년스럽기 까지 하다. 젊은 사람은 보이지 않고 노인 몇 분만이 옹기종기 마을회관에 모여 계시는 것을 보면 내년에 저 많은 땅들이 가꾸어 질까  하는 걱정마저 든다. 하지만 봄이 되면 예년과 같이 주변의 모든 땅들에 작물들이 심어진다. 땅을 놀리지 않는 농부들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농작물이 심어진 논과 밭은 국민 모두에게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과 편안함을 선사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효과의 예로 이처럼 적절한 것이 또 있을까?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농사짓기가 높기로는 선비만 못하고 이익으로는 장사만 못하고 편안하기로는 공업만 못하다’고 하였다. 귀농이란 이름으로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사람이 점차 늘고 있고, 스마트 농업이란 말도 유행하지만 농업이 어려운 것은 다산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 국토를 푸르게 하는 일등 공신인 쌀값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농부의 마음에는 돈으로만 헤아릴 수 없는 다른 것이 있다. 아무리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농사란 때가 있는 법이다.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도 따 말려야 하고 늦기 전에 참깨도 베어서 털어야 한다. 배동받이가 시작한 벼에게 물을 충분이 대어주어야 하며 논두렁에 심은 콩도 건사해 주어야 한다. 오죽하면 ‘어르신 여러분 더위 때는 제발 쉬세요’하는 현수막을 여기저기에 붙여 놓고, 폭염 경보가 발령될 때는  ‘오후 5시 까지는 일하지 마세요’라는 마을 방송도 해 보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농작물들이 농부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이상 기후는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기후가 빠르게 변화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한다. 좁은 국토에 지나치게 많은 공장과 도시적 시설물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20평방킬로미터의 논을 전부 주택용지로 전환하였을 때 평균 기온이 1C 상승한다고 한다.
 

이제 머지않아 온 국토는 황금빛으로 물들을 것이다. 가을 농촌 들녘의 풍성함은 생활고에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쌀농사를 지어도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것은 지푸라기 밖에 없어요’ 라고 하는 어느 할머니의 농담 섞인 푸념에서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아름다운 농촌풍경이 연출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국민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국토에서 농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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