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목록

KREI 논단

KREI 논단 상세보기 - 제목, 기고자, 내용, 파일, 게시일 정보 제공
일손이 부족하다
5101
기고자 김정섭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6년 6월 14일
김 정 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번기엔 군 장병의 대민지원, 일손돕기 등이 활발하다. 소중하고 고맙지만, 옷 입고 가려운 데 긁는 격이다. 때 놓치면 안되므로 농민들은 사방팔방 일손을 수소문한다. ‘봉지 씌우기’ 철이면 과수원 많은 어느 동네에서는 결혼 이민 여성이 큰 몫을 한다. 친정에 전화 걸어 일꾼을 ‘모집’한다. 날짜에 맞춰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 비행기 타고 수십 명이 한국에 들어온다. 일꾼들은 달포쯤 일하고 돌아간다. 관광 비자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이 일용(日傭) 농업 노동을 하는 건 위법이다. 그렇지만 한 해 농사에 농민의 살림살이가 걸려 있다. 속수무책으로 앉아만 있을 수도 없다.
 

으레 나오는 하소연이라며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부엌의 부지깽이도 뛴다는 농번기, 바쁜 농사일을 당해냈던 두레, 품앗이 등 공동체의 협동은 거의 사라졌다. 쪼그라든 농가의 가족만으로는 농사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다. 이제 삯을 주고 품을 사는 수밖에 없다. 한국 전체의 농업 노동 시간 중 고용 노동이 차지하는 몫은 약 15%다. 품앗이 및 일손돕기가 약 5%다. 나머지 80%를 농가 구성원이 맡는다. 정책은 우선 고용 노동, 즉 농업 노동시장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다. 단, 갈래와 매듭을 잘 따져 정책 수단들을 알맞게 배치해야 한다.


노동시장도 ‘시장’이다. 노동력 가격(임금)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된다. 농민이 받는 농산물 가격이 높다면 임금을 많이 주고서라도 사람을 살 테지만, 여건은 힘들다. 임금이 적어도 일거리가 꾸준하면 일하러 올 사람이 더 있을 텐데, 농사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농번기, 농한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구직자 입장에서는 농업 노동이 매력적이지 않다. 품삯은 적은데 상당한 숙련을 요구한다. 여덟 시간 일했는데도 아직 날이 훤하고 밭 저쪽 자투리 일감이 남았다고 추가 작업을 종용한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노임은 비싼데 일 솜씨는 서투르다. 여섯 시가 되면 농기구 갈무리도 안 하고 칼퇴근을 고집한다. 농업 고용 노동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다.


한편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배정량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거세다. 낮은 임금에도 일할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렇지만 배정량을 늘리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외국인 노동자는 상용직(常傭職)으로만 취업할 수 있다. 연중 일거리가 있는 시설원예, 축산, 과수 분야의 규모가 큰 경영체가 아니면 외국인을 고용할 수 없다. 노동력 수요의 계절 진폭이 큰 노지 채소 등의 밭농업에는, 그리고 임금 지불 능력이 낮은 소규모 경영체에는 도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열악한 주거환경,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인권 및 노동 조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시스템은 지속되기 어렵다. 유엔에서는 농업 노동자를 포함한 농민의 인권 선언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다른 편에서는 농업 분야 고용 서비스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일손 부족을 정보 불일치, 이른바 미스매치(mismatch) 문제라고 보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도시에 실업자가 있고 농촌에 일손이 필요하니 양쪽을 연결하자고 한다. 그런데 교통비, 이동 시간, 익숙치 않은 농업 노동 특성 때문에 대도시에 사는 구직자가 농촌에 가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농장 일자리 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보급하자고 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스마트폰에 친숙하지 않은 60세 안팎의 여성이 일용 농업 노동자 계층의 주를 이룬다. 차라리 새벽 골목 전봇대에 붙은 ‘인력 구함. Tel. 000-0000’이라는 벽보가 더 효과적인 매체다.


현재 농촌 지방자치단체 13곳에서 ‘농산업 인력 지원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농업 노동력을 알선한다. 3년짜리 정부 보조금 사업으로 운영되는데, 이후에 예산이 끊어지면 계속될지 불투명하다. 농협중앙회는 160곳에 가까운 시‧군 지부에 ‘농촌 인력 중개센터’를 두었다. 그런데 여러 업무를 겸임하는 직원 한 명이 겨우 전화를 받는 형편이다. 예산 지원이나 인력 배치 없이 개점 휴업인 곳도 많다. 산지출하조직 가운데 수확기 노동력 조달을 비공식적으로나마 떠맡은 곳도 몇 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산지출하조직은 대체로 필요성을 알면서도 노동력 알선에 나서지 않는다. 사고가 나면 져야 할 책임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관련 법제도 미비하다. 농업 분야 고용 서비스를 정부가 지원할 것을 뼈대로 하는 법률안이 있었다. 19대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입법되지 못했다. 자동 폐기될 듯하다.


드러난 문제를 ‘일손부족’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지만, 현장의 사정은 복잡다양하다. 몇 가지 방안이 제출되었고 실험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속 시원한 해결책은 영영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모른 체할 수 없다. 최상위는 아니어도 아주 중요한 농정 현안임을 부정할 수 없다. 꼬인 매듭을 끊은 알렉산더의 단칼 같은 정책은 있을 수 없다. 인내심을 갖고 엉킨 실타래를 하나씩 풀자. 중장기적 안목에서 종합 대책을 만들려는 정부의 의지, 법제를 개선하고 정비하려는 각계의 대화와 노력, 작으나마 고용 서비스를 먼저 시도하는 농촌 지방자치단체나 일선 농협의 적극적 태도, 연구자나 활동가 집단의 관심과 집요한 토론이 필요하다. 일손이 부족하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기고(2016.6.14.)를 일부 보완한 것임.
 

파일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