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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에서 농산물 제외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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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자 박기환
한국농어민신문 기고 | 2015년 8월 17일
박 기 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얼마 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국가별 부패지수를 발표하였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174개 국가 가운데 43위로 칠레(21위)와 도미니카(39위)보다도 낮은 순위였으며, OECD 회원국 34개 국가 중에서는 27위로 거의 최하위 수준이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자부한지 이미 오래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부끄러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 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의 공직자윤리법 등 부패방지 관련 법률의 한계를 보완하여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금지를 위한 종합적인 통제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명절 농산물 선물은 농가의 대목
 

이 법률 제8조와 제9조에서는 수수금지 금품 등 및 처벌 수준을 명시하고 있는데, 직무 관련 및 명목에 관계없이 1회 100만원, 매 회계연도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또한, 100만원 이하의 금품수수에 대해서는 직무와 관련한 금품수수 시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제8조 3항에서는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회상규에 반하지 아니하는 금품 등은 제외하는 예외 조항이 명시되어 있다. 정부는 예외대상 가액범위를 음식물 및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로 정하고자 하는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하나의 미풍양식처럼 명절이 다가오면 그동안 신세를 졌거나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한 지인들에게 조그마한 선물로 감사와 미안한 마음을 전하곤 한다. 대표적인 선물은 사과나 배 등과 같은 농산물이다. 이 때문에 사과와 배는 25% 정도가 명절 선물용으로 판매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가격도 높게 형성되고 있다. 추석 전 2주간 사과의 평년 도매가격은 15kg당 5만 6천원으로 연평균 가격보다 상당히 높으며, 배도 4만 2천원으로 높은 편이다. 말 그대로 농가에게 명절은 대목인 것이다. 농업인들은 이날만을 고대하며 쌀쌀한 찬바람도 따가운 태양열도 마다하지 않은 채 힘들게 농삿일을 이어 오고 있다.
 

판매 감소·가격하락까지 불 보듯
 

그런데 예외대상 가액범위를 선물 5만원으로 한정할 경우 농가의 희망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소비자가 명절에 사과나 배를 선물하려면 소매가격으로 적어도 5만원 이상은 넘게 된다. 소비자는 당연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 과일 선물을 주고받길 꺼릴 것이고, 이는 곧 판매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더욱이 풍작으로 명절 성수기에 많은 물량이 출하되기라도 한다면, 판매 감소가 더해져 가격은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다. 사회정의를 위해 제정된 법률이 적어도 농가에게는 정의롭지 못한 법이 될 수 있으며, 그 피해 또한 고스란히 농가가 감수해야 한다. 농업인은 자식처럼 알뜰히 살피며 조금이라도 좋은 농작물을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제공할 뿐이지 부정부패를 조장한 주체가 아닌데도 말이다.
 

법률을 제정해서라도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보다 투명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는 칭찬받아 마땅하며, 이 근본적 취지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취지로 마련된 법률의 이면에서는 또 다시 농업인의 희생이 강요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일이다. 우리는 공무원행동강령에 의해 화훼농가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공직자에게 주는 3만원 이상의 축하 난 또는 화환을 부패방지법상 금품·향응의 범위에 포함시킨 직후 도매시장에서 꽃 가격은 반 토막이 났었다. 뿐만 아니라 소비도 부진해졌고 지금도 그 여파는 남아 화훼업계는 끊임없이 법률에서 이를 완화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내년 9월 28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법률을 통해 선진국 수준의 부패예방시스템이 구축되기를 다시 한 번 희망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법률로 고통 받게 될 농업인의 눈물도 있을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좋은 취지 이면 농민 희생 간과말길
 

이제 곧 한가위가 다가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올해 추석 성수기 사과 출하량은 전년보다 10% 증가하겠고, 배는 전년보다는 적지만 평년보다는 많은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혹시라도 법률 제정과 관련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소비마저 둔화된다면, 농가의 한숨이 두 배로 커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농업 여건을 감안한다면, 농산물은 금품수수 예외 대상품목으로 규정하거나 농산물에 한해 예외대상 가액범위를 확대해 주어야 한다. 부디 법률 시행 이전에 슬기로운 해법이 찾아져 농업인이 농업에만 전념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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